조승환·김희정·정동만·김대식·김태규·배준영 공동 기자회견…“대한민국 해양물류 경쟁력 스스로 무너뜨리는 초법적 발상”
“항만은 지역의 생명줄…탁상공론으로 미래 망칠 수 없어” 입법 저지·지역 연대 예고
노조·시민·지자체 이어 국회까지…부산·울산·인천 의원들 “끝까지 막겠다”
정부가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PA)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항만공사가 위치한 지역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집단 반발하며 통합 논의를 즉각 철회하라고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특히 그동안 항만공사 노동조합과 항운노조, 시민사회, 지방의회,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통합 반대 움직임이 국회 차원의 정치적·입법적 저지 움직임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의 항만공사 통합 구상이 상당한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김희정·정동만·김대식·조승환 부산지역 의원과 김태규 울산지역 의원, 배준영 인천지역 의원은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항만공사 강제 통합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항만공사 통합 논의는 대한민국 해양물류 경쟁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역사적 퇴행”이라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항만공사 통합을 단순한 공공기관 조직 개편이 아닌 국가 항만 경쟁력과 지역경제 기반을 동시에 흔드는 중대한 정책 오류로 규정했다.
의원들은 “전국 4개 항만공사는 각기 다른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부산항은 세계적인 컨테이너 허브, 인천항은 대중국 교역의 관문, 울산항은 에너지·액체벌크의 심장, 여수광양항은 제철·석유화학 산업의 원자재 기지로 각각 수십 년간 고유한 전문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축적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항만공사는 이러한 항만별 특성을 살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해 왔다”며 “정부는 지금 이 성공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 항만공사법까지 뒤엎는 초법적 발상”
의원들은 특히 정부의 통합 검토가 현행 항만공사법의 기본 취지와 충돌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들은 “현행 항만공사법은 각 항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항만별 독립 법인을 명시하고 있다”며 “이를 무시한 강제 통합은 항만공사법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조승환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항만공사 통합은 결국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법 개정 사항인 만큼 강력하게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는 향후 정부가 통합 방안을 공식화할 경우 국회 입법 과정에서 강력한 저지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대식 의원도 정부의 추진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정부가 일단 통합론을 띄워 여론을 살피고 상황을 전개하려는 것이라면 굉장히 무책임한 태도”라며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합하면 항만 재정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갈 것”
지역경제에 미칠 충격도 핵심 반대 논거로 제시됐다.
부산항만공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4,049억원에 달하고, 인천항은 인천 지역내총생산(GRDP)의 33.9%와 연계돼 있을 정도로 지역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 의원들의 주장이다.
울산항 역시 석유화학과 액체화물, 에너지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으며, 여수광양항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여수국가산업단지를 뒷받침하는 산업물류 거점이다.
의원들은 항만공사가 통합될 경우 각 지역 항만에서 발생한 수익과 재원이 통합기관을 통해 다른 지역에 분산될 가능성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이들은 “통합이 이루어지면 지역경제의 축으로 기능하는 각 항만공사의 재정이 다른 항만에 분산 투자될 것”이라며 “현재 추진 중인 지역별 미래 전략사업에도 직접적인 차질이 불가피하고 지역 투자와 고용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산의 경우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도권 조성, 스마트항만 구축 등 대규모 미래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어 항만공사의 투자 자율성이 훼손될 경우 관련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지역 정치권의 판단이다.
“본사 하나가 전국 항만 통제하면 현장 대응력 무너진다”
중앙집권적인 통합조직이 만들어질 경우 항만의 시장 대응 속도 자체가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글로벌 선사와 화주의 요구는 선박 배치와 항로 개편, 터미널 운영, 배후단지 개발 등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데 통합된 본사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항만별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원들은 “획일적인 통제 아래 현장 대응력이 떨어지고 물류 차질과 공급 지연이 발생하면 글로벌 해운선사와 화주들이 대한민국 항만을 떠날 이유가 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그 피해는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외 주요 항만 사례도 들었다.
이들은 뉴욕·뉴저지, 함부르크, 앤트워프 등 세계 주요 항만이 각 지역의 산업 구조와 물류 환경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항만운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지리적·경제적 연계성이 떨어지는 항만을 하나의 기관으로 묶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시민사회·지방정부 이어 국회까지 ‘반대 전선’
항만공사 통합 반대 여론은 이미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 노동조합은 공동으로 통합 반대 입장을 밝혔고,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과 각 항만 소재 지역 시민사회도 잇따라 통합 논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수시의회와 광양시의회도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으며,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을 지낸 박성현 광양시장도 긴급 담화문을 통해 “항만공사 통합은 지역 항만을 특정 대형 항만에 예속시키고 지역 균형성장을 훼손할 수 있다”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에는 항만공사가 소재한 부산·울산·인천의 국회의원들이 공동 행동에 나서면서 반대 전선이 노동계→시민사회→지방의회·지자체→국회로 확대된 셈이다.
여수광양항만공사가 위치한 전남 지역의 경우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이 없어 이번 공동 기자회견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도 통합 반대 여론은 강하게 형성돼 있다.
의원들은 향후 여야를 떠난 공동 대응 필요성에도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 대신 협력”…공동사업 확대 대안 제시
의원들은 항만공사 간 협력이 필요하다면 법인을 하나로 합치는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기존 독립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공동사업과 협력체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항만공사별 전문성과 투자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공동 연구개발, 해외 포트세일즈, 디지털·친환경 전환, 항만안전, 공동 구매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항만공사 강제 통합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며 “협력이 필요하다면 물리적 통합 대신 항만공사 간 협력체계 강화와 공동사업 확대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항만은 지역의 생명줄이다. 탁상공론으로 대한민국 해양물류의 미래를 망칠 수 없다”며 “지역 시민과 항만 노동자, 해양산업 종사자들과 함께 끝까지 사안을 주시하고 항만공사 통합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항만공사 통합에 대한 반발이 이제 국회 입법 저지 움직임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정부가 통합 방안을 공식화할 경우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항만공사가 위치한 지역의 노동계와 시민사회, 지방의회, 지방정부에 이어 국회의원들까지 일제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충분한 공론화 없이 통합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