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항만공사 소재 도시 중 의회 차원 반대 건의안 첫 채택 사례로 주목
광양시의회도 28일 건의안 채택 전망…여수광양항만공사 노조, 지역 정치권·시민사회 연대 확대
정부가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전국 4개 항만공사를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여수시의회가 지방의회 차원에서 처음으로 통합 추진 중단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항만공사가 위치한 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를 넘어 지방의회가 직접 반대 건의안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항만공사 통합 논란이 지역 정치권의 핵심 현안으로 확산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수시의회는 지난 23일 열린 제256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정신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국 4개 항만공사 통폐합 추진 중단 및 여수광양항 자율성·전문성 강화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건의안에는 정신출 의원을 비롯해 주재현 의장과 박성미·민덕희·고희권·최정필·진명숙·김영규·이선효·강현태·나현수·김철민·박숙희·문상엽·김소리·김채원·김석환 의원 등 모두 17명이 이름을 올렸다.
여수시의회는 건의안을 통해 정부에 ▲전국 4개 항만공사 통합 추진 즉각 중단 ▲여수광양항만공사의 자율성·독립성·전문성 강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지방분권형 국가균형발전 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이번 건의안은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대 항만공사가 위치한 도시 가운데 지방의회가 공식적으로 통합 반대 입장을 채택한 사실상 첫 사례로 알려졌다.
광양시의회도 오는 28일 항만공사 통합 반대 건의안을 채택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져, 여수광양항을 둘러싼 지역 정치권의 공동 대응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항만마다 역할 다른데 하나로 묶는 것은 경쟁력 포기”
여수시의회는 정부가 공공기관 기능개편이라는 명분으로 항만공사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항만별 고유 기능과 산업구조를 무시한 획일적인 중앙집권 행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산항은 글로벌 환적 허브, 인천항은 수도권 관문, 울산항은 액체화물과 에너지 특화항, 여수광양항은 철강·석유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을 지원하는 산업물류항으로 각각 역할과 배후산업이 뚜렷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4개 항만공사를 단일 조직으로 통합할 경우 항만별 특성을 반영한 투자와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고, 현장 대응 속도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수시의회의 주장이다.
여수시의회는 건의문에서 “전국 4개 항만은 저마다 역할과 고유 특성이 판이하다”며 “조직의 거대화가 아니라 신속한 현장 대응력이 곧 항만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항만을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지역 특화 발전 전략을 말살하고 지방의 성장동력을 꺾는 시대착오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여수광양항은 단순 물류항 아닌 국가산업 공급망의 핵심
여수광양항은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석유화학산업과 광양제철소를 비롯한 철강산업, 광양만권 배후산업단지의 원료와 제품 수송을 담당하는 국내 최대 산업물류 항만 가운데 하나다.
컨테이너 처리뿐 아니라 철광석과 석탄, 원유, 석유제품, 화학제품 등 국가 경제와 직결되는 전략 화물을 취급하고 있어 일반적인 상업항만과는 운영 구조와 정책 수요가 다르다.
여수시의회는 이 같은 항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여수광양항만공사가 독자적으로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역 산업계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 항만공사 체제가 출범하면 주요 투자와 예산 배분이 물동량 규모나 정치적 영향력이 큰 항만에 집중되고, 상대적으로 지역 산업 지원 기능이 강한 여수광양항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특히 항만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단일 조직 내부에서 부산항과 인천항, 울산항, 여수광양항이 예산과 사업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경우, 항만별 중장기 전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극항로 대응도 ‘통합’보다 현장 자율성 중요
여수시의회는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항만공사의 통합이 아니라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면 에너지와 광물, 원자재 운송 구조가 재편되고 남해안 주요 항만 간 역할 분담도 새롭게 정립될 가능성이 크다. 여수광양항은 석유화학과 철강, 에너지 물류 기반을 갖추고 있어 북극권 자원 수송과 친환경 연료 공급, 선박 수리·정비 등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통합 항만공사 체제에서는 지역 상황에 맞는 신속한 투자 결정과 선제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우려다.
여수시의회는 “중앙 일원화 구조 속에서는 여수광양항이 확보해야 할 선제적 대응력과 독자적인 투자 여력이 급격히 약화될 것”이라며 여수광양항만공사의 독립성 강화를 요구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노조, 통합 반대 지역여론 확산 주도
이번 지방의회 건의안 채택 배경에는 여수광양항만공사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지역사회 설득 활동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는 정부의 통합 검토 움직임이 알려진 이후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시민사회단체, 항만·산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통합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여수광양항의 독립적 운영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항만공사 통합이 단순히 공공기관 조직개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항만의 투자권과 의사결정권, 지역 일자리, 배후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활동이 여수시의회의 건의안 채택으로 이어졌고, 광양시의회의 후속 대응도 촉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수광양항만공사 노조를 중심으로 시작된 반대 움직임이 지방의회와 지역 정치권, 시민사회로 확산되면서 향후 부산과 인천, 울산 등 다른 항만공사 소재 지역에서도 의회 차원의 대응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광양시의회까지 가세하면 ‘지역 공동전선’ 구축
광양시의회는 오는 28일 항만공사 통합 반대 건의안을 채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항과 광양항을 공동 관할하는 여수광양항만공사의 특성상 양 도시 의회가 잇따라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면 지역 공동 대응의 상징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수와 광양은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광양만권 산업과 항만을 공유하는 공동 경제권이다. 두 지방의회가 항만공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 한목소리를 낼 경우 정부 역시 이를 단순한 노조 반발이나 기관 이기주의로 치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여수시의회 건의안은 대통령비서실장과 국회의장,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행정안전위원장, 국무총리, 해양수산부·행정안전부 장관, 각 정당 대표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전달될 예정이다.
통합 반대 요구가 지역 차원을 넘어 정부와 국회, 정당을 상대로 한 전국적인 정치 의제로 확대되는 셈이다.
항만공사 통합, 효율화가 아니라 지역 통제권 회수 논란
정부가 항만공사 통합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공공기관 기능 중복 해소와 경영 효율화 논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항만업계에서는 항만공사들이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중복 기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장과 배후산업을 담당하는 독립적인 항만 경영 주체라는 반론이 강하다.
항만은 지역별로 물동량 구성과 고객, 배후산업, 시설 구조, 개발 여건이 모두 다르다. 이를 하나의 기관과 획일적인 경영체계로 묶으면 조직 관리비용은 오히려 커지고 의사결정은 느려질 수 있다.
더욱이 정부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면서 정작 지역 핵심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회수하는 것은 정책적 모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수시의회의 이번 건의안이 강한 메시지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항만공사 통합은 단순한 기관 명칭 변경이나 조직 슬림화가 아니라 지역이 보유한 항만 정책 결정권을 중앙의 단일 조직으로 넘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통합은 절대 안 된다”…지역사회 반발 전국 확산 예고
정신출 의원은 “여수광양항은 국가 산업과 남해안권 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항만”이라며 “정부는 지역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항만공사 통폐합 추진을 중단하고 여수광양항만공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수시의회도 “27만 여수시민과 지역사회는 깊은 우려와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정부의 통합 검토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번 건의안 채택은 항만공사 통합 반대 운동이 노동조합 내부의 목소리를 넘어 지방의회와 지역사회 전체의 요구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광양시의회까지 같은 입장을 공식화할 경우 여수광양항을 시작으로 4대 항만공사 소재 지역이 연대하는 전국적인 반대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항만의 경쟁력은 중앙에서 만든 하나의 조직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이해하는 전문성과 신속한 투자, 지역 산업과의 긴밀한 협력에서 나온다.
정부가 충분한 공론화와 산업적 검토 없이 통합을 밀어붙인다면 조직 효율화는커녕 항만 경쟁력 저하와 지역 갈등, 국가 물류체계의 혼란을 자초할 수 있다.
여수시의회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항만공사 통합은 효율화가 아니라 지방분권의 후퇴이며, 여수광양항의 독립성과 국가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개편안인 만큼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