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모르는 작업반 만들어 '한국항만공사' 통합안 제시해
항만 전문가들 "경쟁력 추락 불 보듯"…해수부 대응도 미흡
정부가 공공기관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국내 4대 항만공사 통폐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운·항만업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부산항·인천항·여수광양항·울산항 등 주요 거점 항만을 단일 조직으로 묶는 이른바 ‘한국항만공사’ 설립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항만별 기능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최근 허장 제2차관 주재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단’ 회의를 열고 공공기관 통폐합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4대 항만공사를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해당 회의에는 정작 항만공사 등 당사 기관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정책 추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번 통합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이 과도하게 많다”는 문제 제기를 한 이후 본격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재정경제부는 별도의 작업반을 구성해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며, 항만공사 통합 역시 이러한 기조 속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는 부산항만공사(BPA), 인천항만공사(IPA), 여수광양항만공사(YGPA), 울산항만공사(UPA) 등 4개 항만공사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항만공사법은 항만 운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항만별 공사 체제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안이 현실화될 경우 이러한 구조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특히 항만 간 재정 구조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항과 인천항 등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고 있는 반면, 일부 항만은 부채 부담이 크거나 투자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결국 흑자를 내는 항만이 적자를 떠안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며 “부산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타 항만 적자 보전에 쓰이게 되면, 부산항 자체 투자 여력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진해신항 개발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재정 분산은 곧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산항은 글로벌 환적 허브로서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와 운영 효율성이 요구되는 항만이다. 그러나 통합 구조에서는 투자 우선순위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아,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하향 평준화”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일부 항만공사의 경우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채 문제도 통합 논의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통합 시 이러한 재무 부담이 전체 조직으로 이전될 경우, 전체 항만 시스템의 재정 건전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정책 방향 측면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해양수도 부산’ 전략이나 북극항로(북극항로 시대 대응) 정책과도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항만별 전략적 기능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조직을 통합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다른 쟁점은 민간 영역까지 통합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협회인 한국항만협회까지 통폐합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업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 협회 관계자는 “회원사가 1000개가 넘는 민간 단체가 통합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며 “사전 논의나 의견 수렴도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해수부는 현재까지 통합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정책 주무부처로서 산업 보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권 기조를 의식한 소극적 대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항만공사 통합이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국가 해운·물류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 항만은 지역 산업과 직결된 기반시설인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기 때문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항만은 단순한 공공기관이 아니라 국가 물류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라며 “행정 효율성 논리만으로 접근할 경우, 오히려 국가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통합안은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향후 정책 구체화 과정에서 항만별 특수성과 기능, 재정 구조를 반영한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자 참여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