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구조개혁 차원에서 4대 항만공사 통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운·항만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부산항만공사(BPA) 노동조합은 항만공사 통합 시도를 “지방분권과 지역 중심 경영의 가치를 훼손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규정하고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BPA노조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항만공사 제도의 핵심 취지는 관료주의 탈피, 민간 경영기법 도입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 지방분권에 있었다”며 “각 항만이 지역사회 자율과 참여를 바탕으로 특색 있게 성장해 온 상황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항만공사 제도의 본질을 흔드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번 논란은 지난 3월 20일 본지(해사신문)이 보도한 정부 내부의 ‘한국항만공사’ 설립 검토 움직임과 맞물려 확산되고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개혁 논의 과정에서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를 하나로 묶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 정작 항만공사와 항만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절차적 정당성 논란도 제기됐다.
BPA노조는 통합론이 항만공사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항만공사법이 항만시설 개발과 관리·운영의 자율성, 전문성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항만별 독립 법인 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항만공사 통합은 단순한 조직 조정이 아니라 법 제도의 설계 취지를 뒤흔드는 문제라는 주장이다.
노조는 또 항만공사 제도가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중앙집권적 항만행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당시 항만공사 체제는 부산항을 시작으로 인천, 울산, 여수광양으로 확대됐고, 각 항만은 독립채산제와 지역 참여를 기반으로 항만별 경쟁력을 키워왔다. 노조는 이를 다시 단일 조직으로 묶는 것은 “관료주의 체제로의 회귀이자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항만별 기능 차이도 통합 반대의 핵심 근거로 제시됐다. 부산항은 컨테이너 중심의 글로벌 환적 허브이고, 울산항은 석유·화학 물질을 다루는 에너지 특화 항만이다. 인천항은 대중국 교역의 관문이며, 여수광양항은 제철·석유화학 원자재 물류의 중심기지다. 노조는 이처럼 서로 다른 항만을 하나의 기준으로 운영하려는 것은 각 항만이 축적해 온 전문성과 현장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행정편의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재정 구조 차이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하고 있다. 부산항과 인천항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 수익 기반을 가진 항만의 재원이 다른 항만의 부채나 적자 보전에 쓰일 경우, 부산항 자체의 투자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항은 진해신항 개발과 글로벌 환적 경쟁력 강화, 북극항로 시대 대응 등 대규모 전략 과제를 안고 있어 투자 재원 분산은 곧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수산부의 대응도 논란이다. 항만업계에서는 항만공사 통합이 국가 물류 경쟁력과 지역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임에도 주무부처가 명확한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공기관 효율화라는 행정 논리만으로 접근할 경우 항만별 특수성과 지역 산업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BPA노조는 “정부는 항만공사 제도의 본질인 지방분권과 지역 중심 경영의 가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행정 편의만 추구하는 일방적인 항만공사 통합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부산항 시민사회와 부산항 이용 고객들과 함께 통합 시도를 막아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항만공사 통합 논란은 앞으로 공공기관 개혁을 넘어 지방분권, 항만 전문성, 국가 물류 경쟁력의 방향을 둘러싼 핵심 정책 쟁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편, 본지 취재에 따르면 국내 4대 항만공사의 노동조합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동전선을 마련하고, 정부의 정책에 본격적인 투쟁 방침을 선포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항공사의 통합을 언급하고, 이를 실적으로 여긴 재정당국의 항만공사 통합 추진이 과연 대한민국 항만 경쟁력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항만업계의 우려는 커지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