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같은 날 엇갈린 두 장면…4대 PA노조 세종서 통합 반대 시위, 해수부는 기관장들과 TF 킥오프
노조 “효과 검증도 전에 통합부터 결정”…2011년 정부 연구 “절감효과 연 50억원·통합효과 미미” 제시
해수부, ‘한국항만공사’ 통합 로드맵 착수…고용승계·처우·인센티브 등 후속 논의
“항만정책 주무부처라면 정부 결론 집행보다 항만 자율성·경쟁력부터 지켜야”
정부의 4대 항만공사(PA) 통합을 둘러싼 갈등이 8일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은 이날 세종 재정경제부 앞에서 통합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피켓시위에 나선다. 그런데 같은 날 해양수산부는 4개 항만공사 기관장을 불러 ‘공공기관 기능개혁 TF’ 첫 회의를 열고 가칭 ‘한국항만공사’ 설립을 위한 통합법인 추진단 구성과 후속 절차를 논의한다.
한쪽에서는 항만공사 구성원들이 “검증되지 않은 통합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항만정책 주무부처가 기관장들과 통합 실행방안을 논의하는 두 장면이 동시에 펼쳐지는 셈이다.
특히 해수부가 “노조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도 통합 자체는 이미 기정사실화한 채 실행 로드맵 마련에 착수하면서, 과연 해수부가 항만산업과 지역 항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무부처인지, 정부가 정한 공공기관 통합안을 집행하는 기관인지에 대한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통합 반대 측에서는 해수부가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재정부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럴바에야 과연 해수부의 존재 가치가 있느냐는 비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해수부, 4개 PA 사장 불러 ‘한국항만공사’ 통합 착수
해수부는 산하 공공기관의 유사·중복 기능을 재정비하기 위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TF’를 발족하고 8일 남재헌 차관 주재로 킥오프 회의를 개최한다. 이날 오후 3시 30분부터 본관 14층 간부회의실에서 차관과 4대 항만공사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날 회의는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의 후속 조치다.
정부안에 따르면 부산항만공사(BPA), 인천항만공사(IPA), 울산항만공사(UPA), 여수광양항만공사(YGPA)는 하나의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된다.
항만공사별 항만보안·관리 자회사도 가칭 ‘한국항만보안시설공단’으로 합쳐진다.
이와 함께 국립해양박물관·국립인천해양박물관·국립울진해양과학관은 가칭 ‘한국해양문화진흥원’으로,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과 한국항로표지기술원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각각 통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해수부는 이번 TF를 통해 통합 로드맵을 수립하고 고용승계와 통폐합 전후 불리한 처우 금지, 통폐합 인센티브 등 후속 문제까지 논의할 계획이다.
특히 이날 회의에는 항만공사 직원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반대 시위를 외치는 가운데, 4개 PA 기관장이 직접 참석해 ‘항만공사 통합법인 추진단’ 구성과 통합에 필요한 주요 사항을 논의한다.
사실상 4대 PA 통합을 실행 단계로 넘기는 첫 공식 회의다.
같은 시간 노조는 재경부 앞에서 “통합은 정책 실패”
하지만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은 같은 날 이에 앞선 오전 11시30분 세종 재정경제부 앞에서 ‘4개 항만공사 통합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통합안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다.
박신호 BPA노조 위원장과 이영호 IPA노조 위원장, 강덕호 UPA노조 위원장, 남철희 YGPA노조 위원장이 참석해 기자회견문을 발표한 뒤 오후 12시50분까지 피켓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노조는 정부가 통합의 필요성과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부터 내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2011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중앙대학교에 의뢰한 ‘항만공사 운영 개선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를 근거로 제시했다.
노조에 따르면 당시 연구에서는 4개 PA를 통합할 경우 연간 절감효과가 약 50억원에 그쳤으며 통합에 필요한 행정력과 비용을 고려하면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또 가상의 통합 항만공사의 효율성이 비교대상 기관보다 낮았고 기존 항만공사의 효율성까지 하향 평준화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노조는 당시 연구가 물리적 통합보다 현행 PA체제를 유지하면서 항만공사 간 협력과 운영 효율화를 강화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주장했다.
“통합부터 발표하고 효과는 뒤늦게 분석”
노조가 가장 강하게 문제 삼는 대목은 정책 결정의 순서다.
정부가 지난 3일 4개 PA 통합을 먼저 발표한 뒤 재정경제부가 다음 날인 4일부터 통합 편익 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를 두고 “효과를 분석해 통합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통합부터 결정하고 그 효과를 뒤늦게 찾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항만운영체계 전체를 바꾸는 중대한 정책이라면 통합으로 항만 경쟁력과 물동량, 해외사업, 선사·화주 서비스가 어떻게 개선되고 어느 정도 비용이 절감되는지부터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재정경제부에 “통합이라는 결론부터 정하지 말고 효율성을 증명하라”며 물리적 통합이 현재의 협력체계 강화보다 우월하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PA는 일반 공기업과 다르다”…지역분권형 항만운영 강조
4개 PA노조는 항만공사를 단순한 공공기관 효율화 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항만공사는 하나의 국가기관을 민영화하기 위해 여러 기관으로 쪼갠 것이 아니라 중앙집중적인 항만관리체계에서 벗어나 항만별 자율성과 전문성, 지역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부산항은 글로벌 컨테이너 환적항, 인천항은 수도권과 대중국 물류거점, 울산항은 액체화물·에너지 중심항, 여수·광양항은 철강·석유화학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항이라는 점에서 시장과 고객, 배후경제권 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노조는 세계 주요 항만 역시 각 항만의 특성에 맞춰 개발과 관리, 운영, 임대, 마케팅, 투자 등을 책임지는 지역분권형 PA 체계를 일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지사에 무엇이 남나”…통합본사 ‘옥상옥’ 우려
정부 통합안의 조직구조에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4개 항만공사를 지역지사로 전환하고 통합본사가 개발과 운영, 관리, 물류, 마케팅 등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면 지역지사가 사실상 집행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개발·운영·마케팅 등 핵심 업무를 현재처럼 지역에서 수행하게 한다면 기존 4개 PA 위에 통합본사를 하나 더 만드는 구조가 된다.
노조는 이를 “조직을 줄이는 개혁이 아니라 의사결정 단계만 하나 더 늘리는 옥상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 선사 유치나 항만개발, 배후단지 투자, 지역산업과의 연계 등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항만사업의 특성상 본사 결재 단계가 추가되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통합하지 않아도 협력 가능”
노조는 항만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를 위해 반드시 법인을 하나로 합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외 공동거점과 공동마케팅, 정보시스템 연계, 공동구매, 중복투자 방지, 교육·연구 등의 분야에서는 기존 4개 PA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정부가 기능개혁 방안에서 제시한 공동 해외거점 모델처럼 PA 간 협력체계를 우선 강화한 뒤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며 “왜 가장 되돌리기 어려운 물리적 통합부터 선택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조 “해수부, 정부 결론 집행만 앞장서지 마라”
특히 이날 노조의 요구는 항만정책 주무부처인 해수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노조는 “해양수산부는 정부가 정한 결론을 집행하는 데만 앞장서지 마라”며 “항만정책의 주무부처라면 항만의 지역성과 전문성, 자율성을 지키고 통합이 항만별 경쟁력을 훼손한다면 분명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해수부가 통합 발표 직후 별도의 검증이나 공개적인 의견수렴보다 통합법인 추진단 구성에 먼저 나선 데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
황종우 해수부 장관은 “공공기관 임직원, 노조, 지역사회 등 주요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노동계 입장에서는 이미 통합 방침을 확정해놓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소통이 얼마나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노조가 재정경제부 앞에서 통합 철회를 요구하는 바로 그날, 해수부가 4개 PA 사장들과 통합법인 추진단을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부와 현장 간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올 만하다.
국회 항만공사법 개정이 마지막 격전지
4개 PA노조는 향후 통합에 필요한 항만공사법 개정 과정에서도 총력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노무현 정부 당시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항만공사법의 기본 취지가 항만별 자율성과 책임경영을 보장하는 데 있다며, 정부가 통합을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경우 국회가 통합 효과와 국가 항만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4대 PA 통합 논쟁은 이제 ‘공공기관 몇 곳을 줄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항만을 중앙집중형 단일체제로 바꿀 것인지, 현재의 지역분권형 PA체제를 유지하면서 협력을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항만정책의 근본적인 선택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8일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날이 됐다.
4개 PA노조는 재정경제부 앞에서 “통합을 멈추라”고 외치고, 항만정책 주무부처인 해수부는 같은 날 4개 PA 기관장을 불러 통합법인 추진단을 논의한다.
정부가 주장하는 ‘효율화’가 실제 항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현장의 반대를 외면한 채 조직 통합 자체를 목표로 하는 개편으로 귀결될 것인지가 향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