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PA 노조 공동성명…“지역 자율성 말살하고 글로벌 경쟁력 후퇴”
“항만별 시장·화물·배후산업 모두 다른데 ‘기능 같다’는 전제부터 잘못”
정부 ‘과당경쟁 억제·연계 강화’ 논리에 정면 반박…“수요자가 반대하는데 무슨 수요자 중심인가”
“2011년에도 통합 실익 제한적 판단”…항만공사법 개정까지 총력 저지 예고
정부가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PA)를 하나의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자 항만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은 정부가 제시한 통합 논리가 항만산업의 특성과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통합안을 즉각 철회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 관련 법률 개정 과정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노조는 부산항과 인천항, 울산항, 여수광양항이 서로 다른 배후경제권과 화물·고객·산업구조를 가진 독립적인 항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가 이들을 단순히 ‘기능이 같은 기관’으로 규정해 하나의 조직으로 묶는 것은 항만공사 제도 도입 취지를 뒤집는 중앙집권적 개편이라고 비판했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 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해양수산노동조합연합, 공기업정책연대와 함께 정부의 공공기관 기능개혁 방안 발표 직후 공동성명을 내고 “지역 자율성을 말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후퇴시키는 4개 항만공사 통합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정부는 3일 제11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4개 항만공사를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기로 했다.
정부안은 한국항만공사가 정책·기획 기능을 통합하고 기존 4개 항만공사는 산하 지역지사로 개편하는 구조다. 정부는 지역항만 간 연계를 강화해 공급망 변화 등 글로벌 항만물류 환경에 대응하고 항만공사 간 과당경쟁을 억제하는 한편 해외거점 공동 조성 등을 통해 대외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노조는 정부의 이 같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노정협의 중 기습 발표…사회적 대화 스스로 걷어차”
노조가 가장 먼저 문제 삼은 것은 통합 결정 과정이다.
노조는 그동안 항만공사 노동계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항만·물류업계, 정치권에서 통합에 따른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정부가 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통합안을 확정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와 노동계가 공공기관 기능개혁을 놓고 노정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통합안을 발표한 데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이를 두고 “사회적 대화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라며 사실상 이미 정해진 결론을 전제로 협의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정부 역시 이번 기능개혁 추진계획에서 노정협의체를 중심으로 노조와 협의를 지속하고 주무부처와 개별기관 노조 간 협의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은 지방정부와도 적극 소통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실제 통합 로드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지역과 항만업계, 노동계의 의견을 어느 수준까지 반영할 것인지가 첫 번째 갈등 지점이 될 전망이다.
“부산·인천·울산·광양이 어떻게 같은 항만인가”
노조는 정부 통합 논리의 출발점인 ‘기능은 같으나 지역별로 산재한 4개 항만공사’라는 규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부산항은 컨테이너와 환적 중심의 글로벌 허브항만이고, 인천항은 수도권 물류와 대중국 교역, 울산항은 에너지·액체화물, 여수광양항은 석유화학·제철산업을 각각 주요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항만별 배후경제권과 주요 화물, 고객인 선사·화주와 물류기업, 발전전략이 서로 다른 만큼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한다고 항만 간 연계가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하나의 법인 안에서 4개 항만이 예산과 투자 우선순위를 놓고 경쟁하면서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지고 지역별 이해관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노조는 세계 주요 항만 역시 지역과 배후경제권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운영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율성과 전문성을 갖고 경쟁하고 있다며, 정부가 국가 단위의 주요 항만들을 하나의 중앙조직으로 통합해 국제경쟁력을 높인 해외 성공사례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항만 간 협력의 필요성과 항만공사의 법인 통합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항만 이용자들이 반대하는데 ‘수요자 중심’인가”
정부가 공공기관 기능개혁의 주요 방향으로 내세운 ‘수요자 중심 서비스’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노조는 항만의 직접적인 수요자는 선사와 화주, 터미널운영사, 항만물류기업, 배후단지 입주기업 등인데 정작 지역 항만·물류업계에서 통합에 대한 우려와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금까지 지역 항만공사는 선사·화주와 직접 소통하면서 항만별 투자와 인센티브, 항로 유치, 배후단지 정책 등을 결정해 왔지만 통합 이후에는 주요 의사결정이 중앙의 한국항만공사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현장 위에 또 하나의 의사결정 구조인 ‘옥상옥’을 세워 결정 단계를 늘리고 지역항만의 자치권을 빼앗아 중앙에서 통제하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수요자 중심 서비스인가”라고 반문했다.
항만 경쟁력은 조직의 규모보다 의사결정 속도와 전문성, 현장 대응력에서 나오는데 정책·기획 권한을 중앙조직에 집중하면 오히려 글로벌 선사와 화물을 유치하기 위한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통업무 있다고 법인까지 합쳐야 하나”
비용절감 논리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4개 항만공사에 일부 공통기능이 있다면 시스템 연계와 공동구매, 공동사업 등을 통해 충분히 효율화할 수 있으며, 공통업무가 있다는 사실이 독립 법인 자체를 없애야 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특히 과거 항만공사 통합 검토 사례를 꺼내 들었다.
노조 성명에 따르면 2011년 당시 해양수산 당국이 추진한 ‘항만공사 운영개선 검토용역’에서는 물리적 통합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가 제한적인 반면 통합법인의 대형화와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에 따른 업무효율 저하, 항만 경쟁력 약화 가능성 등이 제기됐으며 결국 기존 체제에서 운영효율을 높이는 방향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노조는 “15년 전 이미 검토하고도 추진하지 않았던 물리적 통합을 정부는 왜 지금 다시 꺼내 들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다만 이번 정부 자료에는 항만공사 통합으로 어느 기능에서 얼마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량적 효과가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는 지역항만 연계와 과당경쟁 억제, 해외거점 공동 조성을 통합 필요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조는 이에 따라 정부가 중복비용을 통합의 근거로 제시하려면 중복 기능이 무엇인지, 현재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는지, 통합으로 얼마나 절감할 수 있는지부터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기에 조직개편과 인사·보수체계 통합, 정보시스템 개편 등에 소요되는 전환비용까지 포함한 실질적인 비용·편익 분석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집권 한계 극복하려 만든 PA를 다시 중앙집권화”
이번 통합 논란은 결국 항만공사 제도의 존재 이유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노조는 항만공사 제도가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인 항만관리에서 벗어나 항만별 특성에 맞는 전문성과 자율성, 책임경영을 구현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안대로라면 4개 독립 공기업은 한국항만공사 산하 지역지사로 전환되고 정책·기획 기능은 중앙조직으로 일원화된다.
노조는 이를 “중앙집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항만공사를 다시 중앙집권화하는 명백한 시대역행”이라고 규정했다.
코레일과 SR의 통합과 항만공사 통합을 동일선상에서 보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코레일과 SR은 동일한 철도망에서 고속철도 여객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4개 항만공사는 서로 다른 지역과 산업기반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립됐다는 것이다.
항만공사법 개정까지 ‘전면전’ 예고
정부와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의 충돌은 이제 통합 발표 자체를 넘어 향후 법률 개정 과정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이번 기능개혁과 관련해 각 부처가 구체적인 기관별 개편 로드맵을 마련하도록 하고 필요한 법률의 신속한 제·개정을 위해 국회와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서 4개 항만공사 노조는 ‘명분도 합의도 없는 강제통합 즉각 철회’, ‘항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중앙집권적 통합 중단’, ‘통합의 객관적 근거 공개와 사회적 논의 착수’를 정부에 요구했다.
정부가 통합을 계속 추진할 경우 상급단체를 비롯해 항만·물류업계와 시민사회, 지역사회와 연대하고 향후 국회의 항만공사법 개정 과정까지 조직적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예고했다.
노조는 “명분 없는 졸속적인 강제통합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투쟁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 과제로 내놓은 항만공사 통합이 발표 당일부터 거센 저항에 부딪히면서 향후 논쟁의 초점은 결국 ‘통합 자체가 항만 경쟁력을 높인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가’로 모아질 전망이다.
특히 정부가 항만공사 통합에 따른 구체적인 경제적 효과와 글로벌 항만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4개 항만공사 통합을 둘러싼 갈등은 지역 정치권과 항만업계까지 가세한 전국적인 항만 거버넌스 논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