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 HMM의 본사 부산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대주주가 해양수도권 구축을 명분으로 이전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반면, 육상노조는 총파업과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며 정면 대응에 나서면서 26일 주총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HMM은 오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2명을 새로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임기가 만료되는 기존 사외이사 3명 가운데 2명의 후임으로 박희진 부산대 경영대학 부교수와 안양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후보에 올라 있다. 안 후보는 산업은행 부행장과 KDB생명 사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로,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맡을 인물로 평가된다. 박 후보는 부산 지역 학계 인사로 향후 지역사회와의 접점 확대에 무게가 실린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인선이 통과되면 HMM 이사회는 기존 6인 체제에서 5인 체제로 재편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사회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해 향후 본사 이전 논의를 보다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관 제3조에 본점을 서울로 명시한 현행 구조상, 4월 이사회에서 정관 변경안을 상정하고 5월 임시 주총에서 본사 부산 이전을 확정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HMM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 35.42%, 한국해양진흥공사 35.08%로, 양측 지분을 합치면 70%를 넘는다. 이 때문에 이전 안건이 실제 주총에 상정될 경우 통과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 역시 HMM 이전을 국정과제로 사실상 못 박은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해양수산부 이전과 해사법원 설치에 이어 HMM 이전도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바 있다.
해양수산부 황종우 장관 후보자도 23일 인사청문회에서 HMM 부산 이전과 관련해 “해양수도권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육상노조가 이야기하는 부분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노사 간 협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원칙적 찬성 속에 조정 가능성도 함께 내비쳤다.
반면 HMM 육상노조는 본사 이전이 회사 경쟁력 훼손과 핵심 인력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해외 고객과 금융기관, 화주 네트워크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서울 본사가 영업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회사가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한 검토 결과에서도 이전 시 효율성이 30~40%가량 떨어진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조는 20일 사측과의 12차 교섭에서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밝히며, 주총 전날인 25일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 이어 다음달 2일 같은 장소에서 조합원 총회와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노조 측은 새 사외이사 후보들에 대해 “대주주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며 “이사회 규모를 줄여 부산 이전 의결을 쉽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법적 대응도 검토되고 있다. 노조는 정관 변경이 강행될 경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배임, 부당노동행위 관련 고소·고발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개정 노조법 시행으로 노동쟁의 대상이 기존 근로조건에서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판단’까지 확대된 만큼, 본사 이전 반대 파업도 합법적 쟁의행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노조 측 주장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산 지역 여론은 대체로 이전에 우호적이다. 시민사회 조사 결과 부산 시민 74.2%가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지역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도 80%를 웃돌았다. 6·3 지방선거에 나선 여야 부산시장 후보들 역시 모두 HMM 부산 이전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어, 지역 정치권 차원에서도 이전 논의는 힘을 얻는 분위기다.
문제는 해양수도권 구축이라는 정책 목표와 서울 근무 직원들의 생활권, 경영 효율성, 글로벌 영업 경쟁력 사이의 간극이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향후 매각 문제까지 맞물려 있다. 업계에서는 부산 이전 문제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HMM 새 주인 찾기도 사실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번 정기 주총은 본사 이전 안건이 직접 상정되지 않더라도, 이후 이사회와 임시 주총으로 이어질 부산 이전 절차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해양수도 부산 구상의 상징적 과제로 떠오른 HMM 이전이 노사 협의 속에 연착륙할지, 아니면 총파업과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지 해운업계의 시선이 26일 주총으로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