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내측에 정박 중이던 HMM 운용 다목적화물선(MPV) ‘나무호’ 폭발·화재 사고가 선박 내부 결함이 아닌 외부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부 조사에서 확인되면서, 한국 해운안보가 중대한 분기점에 섰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선박 화재나 기관실 사고가 아니라, 한국 선사 운용 민간 상선이 중동 전쟁 국면에서 실제 군사적 공격을 받은 사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정부 합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무호는 지난 5월 4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미상의 비행체 2기로부터 약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타격을 받았다. 타격 지점은 선미 좌현 평형수 탱크 외판 부근으로, 좌측 선미 외판은 폭 약 5m, 선체 내부로 깊이 약 7m까지 훼손됐다. 기관실 화재는 1차 타격으로 발생했고, 2차 타격 이후 화재 규모가 급격히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선체 내부 프레임이 안쪽으로 휘고 외판 일부가 뒤틀린 점을 감안하면, 단순 충격이나 내부 폭발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의 외부 물리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고 원인, 내부 결함보다 ‘공중 발사체’에 무게
이번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정부가 기뢰·어뢰나 기관실 자체 결함 가능성보다 ‘미상 비행체’ 타격을 사고 원인으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선박 CCTV에는 비행체가 포착됐고, 현장에서는 비행체 엔진 잔해도 수거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는 현재까지 해당 비행체가 드론인지, 대함미사일인지, 어느 세력이 발사했는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전문가 분석은 갈린다. 드론 가능성을 보는 쪽은 나무호가 반파되거나 침몰하지 않았고, 피해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소형 자폭드론 2기가 동일 부위 또는 인접 부위를 연속 타격했을 경우 선체 외판과 평형수 탱크 부근에 이 정도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함미사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쪽은 파손 부위가 해수면보다 1~1.5m가량 높은 낮은 위치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수면 가까이 저고도로 비행하는 시스키밍 방식의 대함 순항미사일이 선체를 수평으로 타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향후 조사의 핵심은 수거된 엔진 잔해의 성격이다. 제트 엔진 계열이면 미사일 가능성이 커지고, 왕복기관이나 소형 추진체 계열이면 드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품 원산지와 제조 흔적까지 확인될 경우 공격 주체를 추적할 단서가 될 수 있다.
공격 주체, 이란 단정은 유보…그러나 정황상 가장 민감한 변수
정부는 공격 주체를 예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외교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으로 분석된다. 이란이 직접 공격 주체로 확인될 경우 한국은 이란에 대한 공식 항의, 배상 요구, 선박 안전 보장 요구는 물론 미국 주도 해양안보 구상 참여 압박까지 동시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로 공격 주체를 성급히 특정했다가 추가 조사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면 외교적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다만 사건 발생 시점은 매우 민감하다. 사고 당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고립된 선박 탈출을 지원하는 이른바 ‘해방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이란은 자국과 협의하지 않은 통항 시도를 무력으로 저지하겠다고 경고하던 상황이었다. 이란 정부는 한국 선박 공격 개입을 부인했지만, 이란 관영·반관영 매체에서는 한국 선박이 이란의 새 해상 규칙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도 나온 바 있다. 이 때문에 정규군, 혁명수비대, 친이란 세력, 오인 타격 등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이 이란의 공격을 주장하며, 한국의 동참을 요구한 것도 앞으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상황에서 그 귀추도 주목된다. 대응을 섣불리 할 경우에 미국과 이란에 외교적인 헛점을 노출할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부 대응, ‘원인 규명’에서 ‘해상안보 기여’로 무게 이동
청와대는 조사 결과 발표 직후 NSC 실무위원회를 열었다. 외교부는 주한이란대사에게 조사 결과를 설명했고, 미국 등 관련국과도 후속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대응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추가 감식과 공격 수단 규명이다. 비행체 잔해 분석, CCTV 영상 정밀 판독, 선체 손상 방향과 폭발 패턴 분석이 우선이다. 둘째는 외교적 책임 확인이다. 공격 주체가 특정되면 해당국 또는 관련 세력에 대한 항의와 재발 방지 요구가 불가피하다. 셋째는 한국 선박 보호 체계 강화다. 호르무즈 안쪽에 남아 있는 한국 관련 선박 26척과 한국인 선원 160명의 안전 문제가 당장 발등의 불이다.
미국이 제안한 해양자유연합, 즉 MFC 참여 문제도 다시 부상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한반도 안보 상황, 국내법 절차, 국회 동의 필요성 등을 이유로 군 자산 투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한국 선박이 실제 외부 타격을 받은 이상, 단순 정보 공유나 외교 협의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한 질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1단계 대응은 비전투적 기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보 공유, 연락장교 파견, 선박 위치·항로 조정 지원, 보험·위험평가 정보 제공 등이 우선 검토될 수 있다. 이후 상황이 악화될 경우 청해부대 작전 범위 확대나 호르무즈 외곽 안전 지원도 논의될 수 있다. 다만 청해부대를 실질적인 전시 위험수역인 호르무즈 해협에 직접 투입하려면 국회 동의 문제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HMM과 선사들, 보험보다 큰 것은 ‘운항 중단 손실’
HMM은 정부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별도 입장을 내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안이 외교·안보 문제로 비화한 만큼 민간기업이 독자적으로 메시지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무호는 두바이항 수리조선소에서 수리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손상 규모가 작지 않아 비용과 기간 모두 상당할 전망이다.
나무호는 올해 초 인도된 신조선으로, 첫 상업 운항부터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뒤 피격 피해까지 입었다. 전쟁보험 특약상 전손 시 최대 1,000억원 수준의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실제 손실은 수리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운항 중단에 따른 기회비용, 선박 일정 차질, 화주 신뢰도, 선원 교대·체류 비용, 향후 보험료 인상까지 감안하면 경제적 파급은 훨씬 넓다. 한국해운협회는 호르무즈에 고립된 한국 선사들이 전쟁보험료, 유류비, 선원비 등으로 하루 약 4억9000만원의 추가 손실을 보고 있다고 추산했다.
선원 안전, 이제 ‘복지’가 아니라 국가안보 의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선원 안전이다. 나무호에는 한국인 6명을 포함해 24명의 선원이 승선해 있었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두 차례 타격이 기관실이나 거주구역 핵심부를 직접 관통했거나 추가 공격이 이어졌다면 침몰 또는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호르무즈 내 잔류 선박의 선원들은 두 달 넘게 전쟁위험수역에서 장기 대기 중이다. 선원노동계가 요구하는 위기 대응 매뉴얼, 심리치유 지원, 교대 지원, 가족 소통 체계 강화는 더 이상 부차적 문제가 아니다. 한국 해운이 전쟁위험수역을 통과해야 하는 구조라면, 선원 보호는 기업의 노무관리 차원을 넘어 국가의 해상교통안전 정책으로 다뤄져야 한다.
나무호 사건은 한국 해운의 ‘전쟁위험 시대’ 개막 신호
HMM 나무호 사건은 한국 해운사에 남을 중대한 전환점이다. 과거 삼호주얼리호 사건이 해적 대응과 청해부대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면, 나무호 사건은 국가 간 분쟁 수역에서 민간 상선이 직접 군사적 위험에 노출되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공격 수단과 주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이란·미국 등 관련국과 외교적 소통을 유지하되, 한국 선박과 선원 보호를 위한 실효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전쟁보험, 유류비, 운항손실, 우회항로 비용을 포함한 해운업 지원책도 병행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더 이상 먼 중동의 지정학 문제가 아니다. 한국 원유·가스 수송, 국적선 보호, 선원 생명, 한미동맹, 대이란 외교가 동시에 걸린 복합 안보 현장이 됐다. 나무호 피격은 한국 해운정책이 ‘물류 효율’ 중심에서 ‘해상안보와 공급망 생존’ 중심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