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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극항로를 대비하라④…북극항로, 얼음보다 무서운 것은 기술 부족이다
기고/ 북극항로를 대비하라④…북극항로, 얼음보다 무서운 것은 기술 부족이다
  • 해사신문
  • 승인 2025.06.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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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황호 선장/ 전국외국인근로자사회적협동조합 감사 및 전 해운선사 대표


'북극항로'는 앞으로 글로벌 해운산업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이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대통령선거의 주요 공약으로도 여야가 주목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비는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이와 관련한 선원들의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다. 선장 출신인 전문가로부터 이와 관련한 조언을 본지에서 8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의 위기 속에서 인류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해상 루트를 얻었다. 북극항로—이름만으로도 신비롭고 도전적인 이 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항로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길이 짧다고 항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북극은 여전히 극한의 환경이며, 그 속을 뚫고 지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박 운용을 넘어선 ‘기술적 생존력’이 요구된다.

밸러스트탱크 결빙, 균형을 잃는 순간 침몰로 이어진다

북극항로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위험은 밸러스트탱크의 결빙이다. 밸러스트는 선박의 균형을 유지하는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영하 20도 이하의 해역에서는 탱크 내 해수가 얼어붙으며 선박의 복원성과 안정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는 선박이 비정상적으로 기울거나 심각한 구조적 균열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따라서 기관부는 탱크 히터와 순환 펌프의 정상 작동 여부를 사전에 철저히 점검해야 하며, 항해 중에도 주기적으로 온도 감시와 해수 순환을 통해 결빙을 방지해야 한다. 이 한 가지 점검 소홀로 선박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갑판 설비의 동결, 사고는 정박 중에도 일어난다

빙해에서는 정박이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북극항로에서 자주 발생하는 사례 중 하나가 접안 대기 중 설비의 결빙이다. 계류로프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거나, 앵커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비상 탈출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려면 드럼 보온 덮개, 앵커 및 크레인 예열, 저온용 윤활유와 작동유의 적용 등 철저한 사전 조치가 필요하다. 북극에서는 모든 장비가 실제 작동 전에 수동으로 반응을 확인하는 ‘콜드 체크’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이는 해운사 매뉴얼에 포함되어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위성 통신, 고위도에서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현대 해운은 GPS, AIS, ECDIS 등 전자 항법에 의존한다. 하지만 북극해에서는 이 시스템들이 예상 밖의 취약점을 드러낸다. 고위도에서는 위성 수신이 불안정해 위치 오차가 발생하며, 이는 특히 협소한 빙해 항로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항해사는 위성 신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천측 항법, 레이더 오버레이, 육안 관측 등 전통적 항해 기술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된다. 실제로 나는 2021년 북극해 항해 중 GPS 오류로 인한 AIS 중단을 겪은 적이 있다. 그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나침반, 지도, 그리고 다년간의 감각뿐이었다.

전자기기의 결로, ‘작은 습기’가 큰 사고를 부른다

북극의 낮은 온도는 전자 장비에 결로를 일으켜 회로 단락 및 제어 오작동을 초래할 수 있다. 선박의 배전반, 보일러 제어판, 기관실 전자 계기판 등은 항상 5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며, 히팅 패드와 제습장치 설치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특히 자동화된 제어 시스템에 의존하는 현대 선박은 이러한 고장에 더욱 취약하다. 이중화 설계, 수동 조작 대체 장치, 그리고 예비 부품의 확보는 극한 항해의 기본 생존 조건이다. 북극항로에서는 ‘전자적 편리함’보다는 ‘기계적 복원력’이 생명을 구한다.

기술이 열어준 항로는 기술이 지켜야 한다. 북극항로는 결코 단순한 항해 거리를 단축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기술적 시험대이며, 인간과 기계, 자연의 상호작용이 극한에서 시험받는 무대다. 기술적 이해 없이, 장비에 대한 준비 없이 북극항로를 항해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

나는 선장이지만 기술자다. 이는 단순한 직업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장은 선박의 모든 시스템을 이해하고, 평온한 바다에서는 기술의 관리자이며, 위기의 순간에는 기술의 최후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 북극해에서는 이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바다에서 배운다. 그리고 북극은 그 바다 중 가장 엄숙한 교실이다. 북극항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너는 준비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새로운 항로를 항해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신황호 선장은 1957년 생으로 국립목포해양대학교(옛 목포해양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최근까지 유조선 선장으로 승선했다. 해운선사 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전국외국인근로자사회적협동조합 감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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