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톤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또다시 난항에 빠졌다. 11월 분과위원회에서 결론이 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방위사업청이 기존 수의계약안을 재상정하면서 민간위원과 정치권의 반발이 격화된 것이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지연돼온 사업은 올해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2026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총사업비 7조8000억 원 규모의 KDDX는 국산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대형 국책 프로젝트다. 개념설계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맡았으나, 지난해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이 조선사 간 갈등으로 중단됐다.
핵심 논란은 방사청이 기본설계 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사청은 “기술 연속성과 적기 전력화”를 이유로 들고 있으나, 민간위원들은 방사청이 요구한 상생안이나 대안 없이 같은 입장만 되풀이한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올해 3월 민간위원들이 제시한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공동개발 ▲평가기준 조정 등 상생방안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 방사청이 계속 수의계약만 주장한 점이 비판의 중심에 섰다.
일각에서는 방사청의 태도에 대한 구조적 문제도 제기된다. 방사청은 경쟁입찰이 HD현대중공업에 불리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보안감점(1.2점) 기간을 1년 연장해 환경을 스스로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상생안이 기술유출·담합 위험이 있다면, 공정거래위원회 유권해석이나 감사원 사전 컨설팅을 요청하는 절차적 대안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분과위가 합의제로 운영되는 만큼 민간위원 반대가 이어질 경우 의결은 사실상 어렵다. 방사청은 이달 내 방추위에서 사업 방식을 확정할 계획이었지만, 국회 예산안 일정과 맞물려 방추위 개최가 12월로 밀리면서 올해 예산에 배정된 착수금 역시 불용 처리될 전망이다.
방산·조선업계는 사업 지연이 국내 함정 산업 생태계에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 우려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두 대기업의 갈등 장기화는 협력업체 생태계까지 파급될 수 있다”며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상생 방안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간 상생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정치권 압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방사청이 법·제도적 범위 내에서 가능한 선택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내 결론이 무산될 경우 전력화 일정은 물론 국내 조선·방산 산업의 중장기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KDDX 사업이 갈등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표류는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