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이 정치권 개입 논란과 방위사업청(방사청)의 잇단 행정 혼선으로 표류하고 있다. 총 7조8000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치열한 수주 경쟁 속에 당정 협의와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지며, 정작 해군의 전력화 일정은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달 30일 첫 당정협의회를 열고 KDDX 상생 방안과 방산 수출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협의회는 뚜렷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HD현대중공업은 기존 관례대로 기본 설계를 맡은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화오션은 경쟁 입찰을 통한 공정 경쟁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일부에서는 선도함을 나눠 맡는 방안이나 2번함 건조를 특정 업체에 유도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기술 유출 및 담합 논란으로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논란을 키운 것은 방사청의 보안감점 연장 발표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방사청은 당초 최초 확정 판결일(2022년 11월)을 기준으로 3년간 보안감점을 적용해 2025년 11월 종료를 명시한 바 있다. 그러나 방사청은 지난달 30일 입장을 바꿔, 별개 사건으로 분류해 최종 판결일(2023년 12월)로부터 3년간 적용, 즉 2026년 12월까지 감점 연장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에 의견 제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방사청은 지난해까지 “2025년 11월 만료”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했던 터라 업계의 반발은 거세다. HD현대중공업은 “하나의 사건번호로 기소된 동일 사건을 별개로 본 것은 자의적 해석”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더 큰 문제는 방사청의 발표가 여당·국방부·방사청이 참석한 비공개 당정협의회 직후 나왔다는 점이다. 방사청은 “법률 검토 결과”라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정치권의 개입에 따른 ‘짜맞추기 결정’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로 발표 하루 전, 방사청이 한 여당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도 ‘2026년 12월까지 감점 연장’이라는 동일한 결론이 담겨 있었다.
방산 업계는 이번 사태를 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방산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린다면 국방력 강화라는 본래 목적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프로젝트로, 노후 전투함 대체와 해군 전력 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업체 간 소송전, 방사청의 오락가락 행정, 정치권 개입 논란이 겹치며 전력화 일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업계에서는 “선도함뿐 아니라 후속함 건조 일정도 도미노 지연이 불가피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 KDDX 사업은 당정·방사청·업체 간 입장 차이로 결론 도출이 불투명하다. 추석 연휴와 국정감사 일정까지 겹치면서 사업자 선정 절차가 올해 안에 마무리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KDDX 사업은 ‘방산 수출 확대’와 ‘국방 전력 공백 방지’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셈법과 불투명한 행정이 계속된다면 해군의 미래 전력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