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황호 선장/ 전국외국인근로자사회적협동조합 감사 및 전 해운선사 대표
'북극항로'는 앞으로 글로벌 해운산업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이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대통령선거의 주요 공약으로도 여야가 주목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비는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이와 관련한 선원들의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다. 선장 출신인 전문가로부터 이와 관련한 조언을 본지에서 8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기후변화의 산물이자 해운산업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 북극항로. 수에즈 운하를 우회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 항로는 연료비와 시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새로운 해상 루트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 항로의 진짜 도전은 얼음도, 해빙도, 정치적 규제도 아니다. ‘인간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북극항로의 가장 큰 시험이다.
저온은 선원에게 실존적 위협이다
영하 30도. 익숙하지 않은 이 수치는 선원에게 있어 단순한 추위가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다. 30분 만에 발생하는 동상, 작업 중 저체온증, 체감온도 -40도의 환경에서의 장비 조작은 모든 작업을 ‘생존’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극지용 특수 개인보호장비(PPE)가 기본이다. 3중 보온복, 방풍 고글, 방한 장갑 등은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며, 작업시간은 20~30분 이내로 제한하고 온열 회복시간을 보장하는 로테이션 근무가 필수다. 특히 **‘Cold Stress 체크리스트’**를 활용한 노출관리 체계는 체계적인 저온 대응을 위한 안전 수칙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구조가 늦는 북극, 생존 장비가 ‘가장 가까운 병원’
북극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은 구조대 도착까지 수십 시간 이상 소요된다. 때문에 구명설비와 의료장비는 단순한 법적 요건을 넘어서 ‘이동형 생명선’으로 작동해야 한다.
선내에는 저체온증 전용 장비(비상담요, 핫팩, 응급용 체온계)와 자동제세동기, 산소공급장치가 구비돼야 하며, Polar First Aid 교육을 이수한 응급 대응자를 필수 인원으로 편성해야 한다. 또한 비상시 생존공간인 Life Boat, Muster Station 등에는 휴대용 난방장치와 보온복이 추가로 비치되어야 한다.
해빙 위 탈출, 훈련이 생존을 좌우한다
북극항로에서는 해상 탈출조차 평범하지 않다. 구명보트가 바다에 아니라 ‘얼음 위’에 내려지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일반적인 탈출 매뉴얼은 무용지물이다.
이에 대비해 실제 상황을 반영한 Polar Survival Drill을 연 1회 이상 의무화하고, 해빙 위에서 구명장비를 전개하고 생존 복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시나리오 중심의 훈련이 필요하다. 비상장비 역시 주기적인 테스트와 교체 주기 강화를 통해 혹한 속에서도 완벽히 작동할 수 있도록 유지돼야 한다.
극야는 사람의 정신을 시험한다
북극의 ‘극야(Polar Night)’는 단순히 해가 지지 않는 밤이 아니다. 선원의 생체리듬을 무너뜨리고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는 또 다른 적이다. 이로 인해 판단력 저하, 졸음, 집중력 결핍 등의 문제가 빈번히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4시간 교대제 준수와 2인 브릿지 당직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어야 하며, 근무 전 밝은 조명 노출과 휴식실 조도 조절을 통한 생체 리듬 보정이 필요하다. 또한 공기 질 관리를 위한 산소 순환 장치와 공기청정기의 설치는 심신의 안정 유지에 필수적이다.
진정한 안전은 ‘기술’이 아닌 ‘사람 중심’에서 시작된다
북극항로는 단순히 기술로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이다. 첨단 장비와 강화된 선체가 아무리 준비되어 있어도, 가장 취약한 고리는 인간이다. 아무리 뛰어난 항법 시스템이라도 당직자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사고는 순식간에 현실이 된다.
선장은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항해의 성공이 아니라, 선원의 귀환을 최우선 가치로 두어야 한다. 북극항로의 시대가 열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한계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야 항해도 지속된다.” 이 단순한 진리는 북극이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북극항로는 인류의 도전이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기술보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 그것이 북극해 항해의 진짜 출발점이다.
<신황호 선장은 1957년 생으로 국립목포해양대학교(옛 목포해양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최근까지 유조선 선장으로 승선했다. 해운선사 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전국외국인근로자사회적협동조합 감사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