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해운국 위상과 달리 해상보험 경쟁력은 제자리
중국 P&I는 IG 가입 신청…KP&I “우리는 20년 내다봐야 하는 현실”
선체보험 진출 위한 법 개정도 장기간 표류…“해운강국에 걸맞은 정책지원 필요”

최근 중국 P&I Club이 IG(International Group of P&I Clubs)가입을 신청했다. 일본은 선주들이 자국 P&I클럽을 키워 이미 IG에 가입했고, 중국은 정부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국제P&I그룹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해운·조선 강국인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인지 돌아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orea P&I Club·KP&I)는 올해 초 기자간담회를 통해 금년에는 선체보험(H&M)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법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표명한 바 있으나 국내 이해관계자(금융위, 해운조합 등)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P&I클럽이 지난 10월 국제P&I그룹에 정식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한국과 중국 P&I산업의 격차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국제P&I그룹도 중국 P&I클럽의 가입 신청을 공식적으로 접수했다고 확인했다. 현재 IG에는 12개 클럽이 가입해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 P&I클럽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운전문매체 트레이드윈즈(TradeWinds)는 지난 4일 성재모 KP&I 전무와의 인터뷰를 통해 KP&I의 국제P&I그룹 가입 구상과 사업 다각화 계획을 조명했다. 트레이드윈즈의 질문은 사실상 “일본은 이미 IG 회원이고 중국마저 가입에 나섰는데 세계적인 해운국인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대해 성 전무는 당장 외형을 키워 IG 가입을 추진하기보다 재무건전성과 기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현실적인 입장을 내놨다. 성 전무는 “국제P&I그룹 회원이 되려면 연간 보험료 수입이 최소 1억달러는 돼야 하지만 현재 KP&I는 3,600만달러 수준”이라며 “최소 20년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KP&I가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0년 설립된 KP&I는 올해 창립 26주년을 맞았지만 가입 선복은 약 1,000만GT에 머물고 있다. 반면 중국 P&I클럽의 P&I 가입 선복은 1억GT를 넘어섰다. 중국 P&I클럽은 10월 13일 IG에 정식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현재 약 1억480만GT, 2,199척을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한국과 중국 P&I클럽의 규모 차이가 아니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 해운산업을 뒷받침하는 P&I를 국가 해사산업의 중요한 인프라로 인식하고 육성해온 반면 한국에서는 P&I산업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선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자국 P&I를 키웠고 20년 만에 IG에 가입하였고, 중국은 정부가 선박가입을 주도적으로 뒷받침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선박 보유량과 조선 경쟁력에서 세계적인 해운·조선국의 위치에 있음에도 해상보험 분야에서는 해외 P&I클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체보험 진출도 막혀…“P&I만 해서는 성장 한계”
KP&I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업범위 확대다. KP&I의 설립 근거법은 선주상호보험조합법( 법률 제20436호)은 우리나라 P& Club의 사업을 선주의 제3자에 대한 배상책임만 담보하는 P&I보험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사업범위 제한은 1999년 입법 당시 일본의 선주상호보험조합법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입법을 하였기 때문으로 Global Standard와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P&I클럽들은 전통적인 P&I보험을 넘어 선체보험, Offshore보험, Energy보험등 다양한 해상보험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선주상호보험조합법은 우리나라 P&I Club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가드(Gard)와 노스스탠더드(NorthStandard) 등 주요 해외 클럽들은 P&I보험뿐 아니라 다양한 해상보험 상품을 취급하면서 선주에게 종합적인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P&I도 지난 2017년 관련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KP&I는 당시 법개정의 실패를 “선체보험시장 진입을 둘러싼 국내 보험업계 등의 반대”가 주요한 장애물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본지의 취재에 의하면 올해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KP&I의 선체보험 진입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고, 한국해운조합 역시 기존에 취급하고 있는 외항선 선체보험시장과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KP&I의 사업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보험…“안전한 해운물류망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해결 필요”
지난 2월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내 선박들의 전쟁보험 확보가 해상운송의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당시 26척의 국내 선박이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했으나 엄청나게 높아진 보험료와 안전을 우려한 선사들의 대응으로 상당기간 운항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해수부도 14억원의 추경을 편성해 중소선사 9척에 대한 할증보험료를 지원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으나 이것은 미봉책으로 보여진다.
해운물류망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보험제공이 필수적인 사안임에도 시중 손해보험사들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의 특성상 전쟁 위험을 인수하는데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즉 전쟁은 보험제공을 마비시키는 대표적인 시장실패의 상황인 것이다.
반면 KP&I는 비영리법인으로 공익적인 목적으로 보험인수를 할 수 있는 기관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설립부터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투입하였고, 작년에 해운협회는 100억원의 톤세절감액을 KP&I에 출자하기로 결의하고 시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비록 KP&I가 아니더라고 해수부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처럼 전쟁보험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북극항로 보험은 KP&I가 지원…“가장 해운 전문의 보험사”
최근 완료된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기여한 공로로 KP&I는 대통령 감사패도 받은 바 있다. 북극항로 시범운항 과정에서 선체보험과 P&I를 포함한 보험 관련 현안을 검토하고 해결하는 데 실무적인 지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는 기존 항로와 달리 빙해 운항과 구조·구난, 선박 안전, 환경오염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험 확보가 시범운항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KP&I는 이 과정에서 축적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련 보험 검토를 지원한 것이다. 결국 해상보험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업계나 정부는 KP&I의 전문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정작 국내 해상보험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제도 개선에는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나오고 있다. 국가적인 해운위기나 새로운 항로 개척 과정에서는 KP&I의 전문성을 활용하면서도 선체보험과 전쟁보험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는 기존 시장질서를 이유로 제동을 거는 것은 모순이라는 문제제기다.
해외 P&I는 한국시장 공략…정작 KP&I는 ‘규제’
이런 상황에서 해외 대형 P&I클럽들의 한국시장 공략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노스스탠더드는 2024년 서울에 상설사무소를 설치했고, UK P&I클럽도 한국시장 영업을 강화하는 등 국제P&I그룹 소속 클럽들이 국내 선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한국 선주들은 글로벌 P&I클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출발한 KP&I는 사업범위를 확대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 KP&I가 느끼는 가장 큰 불균형이다. KP&I 측에서는 한국 해운시장은 사실상 글로벌 P&I클럽에 개방돼 있는 상황에서 자국 P&I의 상품 확대를 제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내 해상보험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현재 KP&I가 보험을 인수한 선박은 약 750척이며 해외 선주 비중은 약 5%다.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신조선 가운데 KP&I가 보험계약을 확보하는 비중도 10~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적인 조선소에서 건조된 선박들이 해외 선주에게 인도되고 있지만, 선박과 함께 해상보험시장까지 확보하는 산업 연계 구조는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선주, 중국은 정부…한국은 누가 P&I 키우나
P&I Club과 관련해 가장 주목해야 하는 비교 대상은 일본과 중국이다. 일본 P&I클럽은 오랜 기간 일본 선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성장해 현재 아시아에서 유일한 국제P&I그룹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자국 P&I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 P&I클럽은 이미 IG의 승인 재보험조합(approved reinsured mutual association)으로 활동해왔으며 지난 10월 정식 회원 가입을 신청했다. IG는 앞으로 수개월 동안 기존 회원클럽들이 정한 가입기준에 따라 신청을 심사할 예정이다.
KP&I의 시각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성장 경로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국 해운산업을 지탱할 P&I를 단순한 보험회사 하나가 아니라 국가 해운산업을 구성하는 핵심 인프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해운과 조선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P&I를 포함한 해상보험산업 육성에서는 이러한 전략적 접근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선복만 늘리지 않겠다”…그럼에도 필요한 정책 뒷받침
그렇다고 KP&I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무리하게 몸집부터 키우겠다는 것은 아니다. 성 전무는 오히려 외형 확대보다 재무건전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P&I의 연간 보험료 수입은 약 3,600만달러이며, 올해 말 지급준비금은 약 5,000만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성 전무는 “가입 선복만 늘리려 하면 재무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며 국제P&I그룹 가입에 앞서 자체적인 경쟁력과 재정적 기반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P&I그룹 가입을 서두르기보다 20년을 내다보고 재무건전성과 보험 인수능력, 가입 선복을 단계적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KP&I가 지적하는 것은 그 20년을 오롯이 KP&I 혼자 힘으로 버텨야 하느냐는 문제다. 일본은 선주들이 자국 P&I를 뒷받침했고 중국은 정부 차원의 지원 아래 국제P&I그룹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 역시 해운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P&I보험을 단순한 민간 보험상품이 아니라 해운 공급망과 국가 경제안보를 지탱하는 해사금융 인프라의 하나로 바라볼 때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북극항로 사례에서 나타났듯 해상보험은 평상시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선박의 운항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해외 P&I클럽들이 한국시장을 전략적으로 공략하고 중국마저 국제P&I그룹 가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해운·조선국인 한국이 자국 P&I산업을 어떤 위치에 놓을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