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흑해 상선 운항으로 확산되면서 흑해가 올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상업 해운항로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올해 들어 흑해에서 공격을 받거나 공격의 영향을 받은 선박이 570척을 넘어섰으며 최소 40명의 선원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중동 핵심 해상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선원 사망자 24명보다 많은 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해상보안업체 암브리(Ambrey)와 국제해사기구(IMO) 자료를 인용해 올해 흑해에서 570척 이상의 선박이 공격을 받았고 최소 40명의 선원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흑해의 선원 인명피해가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공격은 올 하반기 들어 급격히 늘었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에만 약 387척의 선박이 공격을 받아 직전 분기보다 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암브리에 따르면 최근 공격은 우크라이나 항만과 상업선박을 중심으로 더욱 집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루마니아 연안에서도 상선이 침몰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23일 코모로 국적 화물선 ‘Khoryv호’가 루마니아 콘스탄차항에서 약 13해리 떨어진 흑해 해상에서 드론 공격을 받은 뒤 침몰했다.
선박에는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선원 13명이 승선하고 있었으며 9명이 구조됐지만 1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루마니아 당국은 악천후 속에서 실종자 수색을 이어갔다.
니쿠쇼르 단 루마니아 대통령은 이번 공격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규정하며 러시아를 비판했다. 다만 개별 해상공격의 책임과 관련해서는 각국 정부와 군 당국의 주장이 엇갈릴 수 있는 만큼 사건별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흑해의 안보 악화는 선박 운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F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최대 항만권역인 ‘그레이터 오데사(Greater Odesa)’ 항만을 이용한 선박은 지난 7월 약 400척에서 9월에는 10척 미만으로 급감했다. 반복되는 공격으로 선사들이 흑해 운항을 기피하면서 항만 물동량에도 타격이 나타나고 있다.
보험료 부담도 크게 늘었다.
흑해를 운항하는 선박의 전쟁위험보험료는 경우에 따라 선박 선체가액의 최대 15%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선사의 운항비용을 크게 끌어올려 흑해 항로 투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높은 보험료를 피하기 위해 일부 선사가 선가가 낮은 노후선을 투입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면서 선원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FT는 위험 증가와 높은 보험비용이 선박의 흑해 투입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흑해 항로 위축은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원자재 수출에도 부담이다.
우크라이나는 흑해 항만을 주요 농산물 수출 창구로 활용해 왔지만 상선 공격과 보험료 상승, 운항 선박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해상 수출능력이 제약받고 있다. 이에 따라 선박 운임과 보험비용 상승이 화물가격과 글로벌 곡물 공급망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올해 들어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위기와 함께 흑해에서도 상선 공격이 급증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는 동시에 여러 고위험 해역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만 흑해는 호르무즈와 달리 상선이 전쟁 당사국의 항만과 인접 해역을 직접 통항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위험의 성격도 다르다. 최근처럼 상업선박과 항만시설에 대한 공격이 이어질 경우 흑해 해상교역의 가장 큰 변수는 단순 운임보다 선원 안전과 보험 인수 가능성, 선사의 운항 지속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