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항만 2조2천억 ‘2.7% 증액’ 그쳤지만…진해신항·북극항로·항만AI에 집중투자
항만개발 1조6,800억원 유지…부산항 진해신항에만 4,816억원, 해양수도권 인프라 예산의 96% 차지
북극항로 준비 983억원…시범운항·쇄빙선·쇄빙컨테이너선·거점항만까지 ‘항로+선박+항만’ 패키지
피지컬AI 하역장비·스마트항만·완전자율운항선박 신규·증액…항만SOC에서 ‘지능형 인프라’로 투자축 이동
호르무즈 공급망 위기에 국가필수선대 보상 100억원…연안여객선 공영제도 96억원 첫 반영
전체 예산 증가폭과 비교하면 해운·항만 투자 확장성은 제한…MRO·선박금융·국적선대 확대는 후속 예산과제로
해양수산부의 2027년도 정부 예산안이 사상 처음 8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해운·항만 부문에는 2조2,005억원이 편성됐다. 전체 해수부 예산이 10.8%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해운·항만 부문의 증가율은 2.7%에 그쳐 외형상으로는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세부 사업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사회간접자본(SOC) 확대보다는 부산항 진해신항을 중심으로 한 메가포트 구축, 북극항로 개척, 항만 피지컬AI, 완전자율운항선박, 국가필수선대 등 ‘글로벌 공급망 대응과 해양수도권 육성’에 예산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구조가 바뀌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마련한 2027년도 정부 예산안은 총 8조2,636억원으로 올해 7조4,583억원보다 8,053억원, 10.8% 증가했다. 이는 2013년 해수부 재출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그러나 해운·항만 예산은 올해 2조1,428억원에서 내년 2조2,005억원으로 577억원 늘어 증가율은 2.7%에 머물렀다. 수산·어촌 11.5%, 해양환경 15.6%, 해양산업 등 기타 부문 10.0% 증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이번 해운·항만 예산안은 전체 규모가 크게 불어났다기보다 한정된 재원을 전략사업으로 재배치한 예산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항만개발 1조6,800억원…SOC 외형은 사실상 ‘보합’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항만 SOC다.
해수부는 동해신항과 새만금신항, 군장항 등을 포함한 대규모 항만개발 사업에 올해 약 1조6,700억원에서 내년 약 1조6,800억원으로 투자 규모를 소폭 확대한다. 전체 항만개발 투자액은 큰 변화가 없는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부산항 진해신항이다.
해양수도권 관련 사업 가운데 ‘항만SOC·핵심기술 등 인프라 구축’에는 총 5,026억원이 배정됐는데, 이 가운데 부산항 진해신항 예산이 올해 4,622억원에서 4,816억원으로 194억원, 4.2% 증가했다. 해양수도권 관련 항만SOC·핵심기술 예산의 약 96%가 진해신항 한 사업에 집중된 셈이다.
정부가 해양수도권을 서울 수도권에 버금가는 초광역경제권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내놓은 상황에서 부산항 진해신항이 사실상 핵심 물류 인프라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특히 해수부는 2027년 해양수도권 사업에 총 6,228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5,499억원보다 729억원, 13.3% 증가한 규모다. 이 중 항만 SOC와 핵심기술 인프라가 5,026억원으로 전체의 80%를 웃돈다.
이는 정부의 ‘해양수도권’ 구상이 아직까지는 해운기업이나 금융·서비스업보다 항만 인프라 구축에 재정의 무게중심이 실려 있음을 보여준다.
북극항로에 983억원…‘시범운항’ 넘어 산업정책으로 확대
2027년 해운·항만 예산에서 가장 큰 정책 변화는 북극항로다.
정부는 미래 북극시대 대비 사업에 983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792억원보다 191억원, 24.1% 늘어난 규모다.
특히 올해까지 연구개발과 쇄빙연구선 중심이던 북극정책이 내년부터는 실제 항로 개척과 선박·항만·인력·산업을 아우르는 구조로 확대된다.
북극항로 장기 개척 대비 사업이 신규로 편성돼 169억원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북극 관련 데이터 축적 등에 23억원, 시범운항 지원 등에 125억원이 들어간다. 북극항로 연관산업 육성에도 신규 98억원이 투입된다.
극지해기사 양성에는 34억원, 북극항로 협력기반 구축에는 신규 15억원이 배정됐다. 친환경 쇄빙선 건조지원 110억원도 이어진다.
쇄빙컨테이너선 개발도 확대된다. 친환경 쇄빙컨테이너선 개발 R&D는 올해 37억원에서 내년 49억원으로 32.4% 증가한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에는 605억원이 투입된다.
더 중요한 변화는 항만까지 연결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북극항로 거점항만 조성계획 수립에 20억원을 편성하고, 북극항로 운항선 추진·발전시스템 안전·환경 기술개발 16억원, 북극해 해빙·해양·해저환경 연구에 신규 115억원 등을 투입한다.
결국 2027년부터 북극항로 정책은 단순한 ‘배 한 척 시범운항’에서 벗어나 선박-선원-항만-기술-국제협력-산업생태계를 묶는 국가 해운전략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특히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아시아측 거점으로 만들려는 해양수도권 전략과도 직접 연결된다.
부산 이전 선사에 선박건조비 지원…기업 유치에 ‘해운정책’ 동원
해양수도권 정책 가운데 해운업계가 가장 주목할 사업은 지방이전 선사에 대한 친환경선박 건조 지원이다.
정부는 해양수도권으로 해운기업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선사를 대상으로 친환경선박 건조를 지원하는 사업을 신설하고 121억원을 편성했다.
전체 친환경선박 전환건조 지원사업도 올해 390억원에서 477억원으로 87억원 증가한다.
기존 외항선사 친환경선박 건조지원은 280억원에서 246억원으로 줄어드는 대신 쇄빙선 건조 110억원과 지방이전 선사 지원 121억원이 반영됐다.
이는 선박건조 지원정책이 단순한 친환경 전환에서 기업의 지역 이전을 유도하는 산업입지정책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지원액 121억원만으로 대형 외항선사의 본사 이전을 실제로 끌어낼 수 있을지는 별도 문제다.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한 척의 선가가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지원 자체보다 세제, 금융, 인력, 주거, 해사금융·법률 서비스와의 패키지 설계가 향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항만에도 피지컬AI…‘콘크리트 예산’에서 ‘소프트웨어 예산’으로
항만 분야에서는 AI 투자 확대가 두드러진다.
피지컬AI 기반 항만하역·이송장비 실증사업이 새롭게 만들어져 74억원이 투입된다. 스마트항만 기술개발 R&D도 올해 94억원에서 내년 180억원으로 거의 두 배 확대된다.
세부적으로는 AI를 활용해 항만 상황을 인지·예측하고 최적의 운영방안을 제시하는 기술개발에 55억원, 피지컬AI 기반 컨테이너 자율하역 기술개발에 29억원이 신규 투입된다. 스마트항만 부품·시스템 핵심기술 개발도 96억원으로 확대된다.
항만정책의 투자 방식이 과거 방파제·안벽·부두 건설 중심에서 AI가 하역장비와 터미널 운영을 지배하는 ‘지능형 항만’ 투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진해신항이 본격적으로 개장하는 시점에는 자동화 수준을 넘어 AI 기반 완전자율 터미널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같은 기술투자는 부산항의 장기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완전자율운항선박 예산 2.5배…국적선 40척에 시스템 실증
선박 역시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된다.
IMO 레벨4 수준의 완전무인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예산은 올해 63억원에서 157억원으로 94억원, 약 149% 증가한다.
여기에 국적선박에 자율운항시스템을 실제 보급하는 사업이 처음 시작된다. 예산은 29억원으로, 국적선 40척을 대상으로 자율운항시스템 도입을 지원한다.
연구실 수준의 기술개발에서 실제 국적선 적용으로 정책 단계가 넘어간다는 의미가 크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ICT 기술을 가지고도 자율운항선박 서비스와 운항 데이터 시장에서 뒤처질 경우 향후 선박의 부가가치를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 넘겨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실선 보급 확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호르무즈 위기가 바꾼 예산…국가필수선대 100억원
최근 호르무즈해협과 홍해에서 반복된 공급망 위기도 내년도 해운예산에 직접 반영됐다.
국가필수선대 운영 손실보상금은 올해 82억원에서 100억원으로 18억원 늘어난다.
국가필수선대는 전쟁이나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 원유와 LNG, 원자재 등 국가 전략물자를 안정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규모의 국적선을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다.
호르무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단순히 ‘싼 운임에 배를 빌릴 수 있는가’보다 비상시 정부가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국적선박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가 경제안보 문제로 부상한 것이다.
다만 100억원 규모의 손실보상금만으로 국가필수선대의 양적 확대까지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향후에는 전략화물 적취율, 국적 LNG선·원유선 확보, 장기운송계약, 선박금융과 연계한 국가필수선대 확대가 보다 본격적인 정책과제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해외 물류망 투자도 31억원으로 확대…규모는 아직 ‘초기 단계’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해외 물류지원도 확대된다.
국제물류투자 분석지원센터 기능 강화와 해운·물류기업 해외진출 컨설팅 예산은 올해 25억원에서 31억원으로 늘어난다.
최근 국적선사와 한국 기업의 해외 컨테이너터미널 확보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정책 방향은 맞지만 투자 규모 자체는 아직 작다.
해외 터미널 한 곳의 지분 인수에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해양진흥공사의 금융과 블라인드펀드, 민관 공동투자를 결합한 별도의 대규모 해외 항만투자 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즉 31억원은 해외 물류거점을 직접 확보하는 돈이라기보다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투자 타당성을 검토하는 ‘씨앗 예산’에 가깝다.
연안여객선 공영제 첫 예산 96억원…11개 항로 국가가 직접 책임
연안해운 분야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연안여객선 공영제가 가장 큰 변화다.
정부는 국가보조항로 결손보상금 예산을 올해 257억원에서 301억원으로 확대하면서 공영제 운영을 위해 신규 96억원을 배정했다. 정부가 직접 여객선을 투입하고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방식으로 2027년 11개 항로에서 시행할 예정이다.
이는 연안여객선을 단순한 민간 해운사업이 아니라 섬 주민의 필수 교통수단으로 바라보는 정책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민간항로 운영지원 예산은 212억원에서 162억원으로 줄어든다. 공영제 확대와 기존 민간항로 지원 간 역할을 어떻게 재조정할지가 향후 연안여객선 업계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운·항만 2.7% 증가의 이면…‘선택과 집중’은 선명, 산업기반 투자는 숙제
2027년도 예산을 해운·항만산업의 시각에서 보면 평가가 엇갈린다.
전체 해수부 예산이 재출범 이후 최대폭인 10.8% 증가했는데도 해운·항만 예산 증가율은 2.7%에 그쳤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해운·항만은 국가 수출입 물류와 공급망을 떠받치는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 전체 예산 증가율에 버금가는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반면 예산의 방향성은 이전보다 선명해졌다.
부산항 진해신항을 중심으로 한 메가포트, 북극항로, 항만 피지컬AI, 완전자율운항선박, 국가필수선대, 연안여객선 공영제를 하나의 축으로 놓으면 ‘항만을 짓고 선박을 지원하는 정책’에서 ‘공급망을 통제하고 미래 항로와 운항기술까지 확보하는 정책’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특히 해양수도권 관련 예산이 13.3% 늘고 북극시대 대비 예산이 24.1% 증가한 것은 해수부 부산 이전 이후 정책의 중심축이 동남권 항만·해운산업과 북극항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빠진 퍼즐도 적지 않다.
최근 한·미 조선협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함정·상선 MRO와 대형 수리조선 인프라, 국적선대 확대를 위한 선박금융, 해외 컨테이너터미널 확보, 중소·중견선사의 친환경선 전환 등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자는 이번 예산안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따라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단순히 해수부 전체 예산이 8조원을 넘어섰다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해운·항만 부문에 실제로 얼마가 추가되고, 그 돈이 국적선대와 항만 경쟁력 강화라는 산업 성과로 연결되는지를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2027년 해수부 해운·항만 예산은 규모 면에서는 ‘대폭 증액’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대신 진해신항과 북극항로, AI·자율운항, 공급망 안전이라는 몇 개의 전략축에 선택적으로 돈을 몰아준 예산에 가깝다.
관건은 이 투자가 부산항을 단순한 환적항을 넘어 북극항로·스마트항만·해양산업이 결합된 글로벌 거점으로 바꾸고, 국적선사가 공급망 위기에서 스스로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