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울산·부산서 통합 반대 90% 안팎…쟁의행위 참여 의향은 86~94%에 달해
“항만 경쟁력 검토 없이 밀실·졸속 추진”…지역 항만주권 훼손 우려도 확산
지역사회·정치권·항만업계 반대 이어 내부 구성원까지 사실상 ‘불신임’
정부가 추진 중인 4대 항만공사(PA) 통합에 대한 내부 반발이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 통합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나타난 데 이어 대다수의 직원들이 준법투쟁 및 파업 등 쟁의행위에도 참여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졸속 통합을 강행할 경우에 파업도 불사할 것으로 보여 자칫 항만 운영에도 치명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특히 일부 항만공사에서는 통합 반대보다 준법투쟁 및 파업 등 쟁의행위 참여 찬성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정부가 항만공사 통합을 밀어붙일 경우 단순한 정책 반대를 넘어 전국 주요 항만의 노사 갈등과 현장 투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항만업계에 따르면 최근 4대 항만공사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항만공사 통합에 대한 찬반 및 준법투쟁 및 파업 등 쟁의행위 참여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한 결과, 4개 항만공사 모두 통합 반대 의견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천항만공사는 조합원 84.58%가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96.35%가 통합에 반대했다. 쟁의행위 참여에도 94.05%가 찬성했다. 사실상 조합원 대부분이 정부의 통합 구상에 반대하면서 쟁의행위까지 감수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울산항만공사 역시 투표율 85.4%를 기록한 가운데 통합 반대가 90.8%, 쟁의행위 참여 찬성이 85.7%에 달했다.
부산항만공사의 반발도 거셌다. 투표율이 4개 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94.6%를 기록했으며 통합 반대는 89.6%였다. 특히 쟁의행위 참여 찬성률은 92.71%로 통합 반대율보다 오히려 높았다.
여수광양항만공사는 투표율 76.3%, 통합 반대 69.0%로 다른 항만공사보다 반대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쟁의행위 참여 찬성률은 85.9%에 달했다. 통합 자체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정부의 추진 방식에 대한 현장 구성원들의 불만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번 투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준법투쟁 및 파업 등 쟁의행위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내부 분위기가 수치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4개 항만공사 모두 준법투쟁 및 파업 등 쟁의행위 참여 찬성률이 85%를 넘어섰다.
단순한 통합 찬반을 넘어 정부가 현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강행할 경우 실제 집단행동으로 맞설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장을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항만업계에서는 이번 투표 결과를 정부가 단순한 노조의 반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논란의 핵심은 ‘왜 항만공사를 통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정책적 검증과 사회적 합의가 있었느냐는 데 있다.
항만공사제도는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의 특성과 경쟁 여건을 고려해 항만별 자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정부 중심의 항만 운영에서 벗어나 기업적 경영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각 항만공사는 설립 이후 지역 산업구조와 물동량, 배후경제권, 항만 기능에 맞춰 독자적인 개발·운영 전략을 구축해 왔다.
따라서 4개 항만공사를 하나의 체제로 묶는 문제는 단순한 공공기관 조직개편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항만별 경쟁력과 경영 효율성은 물론 항만개발 투자, 부채와 자산, 항만별 수익구조, 지역경제 파급효과, 글로벌 선사 유치 전략까지 면밀하게 따져야 할 국가 항만정책의 근간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통합 논의가 충분한 공론화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현장에서는 이를 ‘밀실 통합’, ‘졸속 통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공공기관이 많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재정당국의 '과잉충성'이 낳은 결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통합의 논리 조차 없이 시작된 졸속 행정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항만공사 직원들의 반발은 고용이나 조직 축소에 대한 우려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합 이후 의사결정권이 중앙으로 집중될 경우 각 항만이 지역 산업과 물류환경에 맞춰 추진해 온 투자와 개발사업의 자율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논란은 ‘지역 항만주권’ 문제로 번지고 있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환적 허브항만, 인천항은 수도권 관문항, 울산항은 국내 최대 액체화물·에너지 거점항, 여수광양항은 국내 최대 산업항 가운데 하나로 각각 성장 전략과 역할이 다르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항만들을 단일한 조직과 의사결정 구조 아래 묶을 경우 지역별 특성을 살린 항만정책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항만공사 통합에 대한 반발이 PA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 정치권과 항만·물류업계, 시민사회에서도 통합에 반대하거나 충분한 공론화와 타당성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항만에서 창출된 수익과 자산을 해당 항만의 경쟁력 강화에 재투자하는 현행 PA 체제가 통합 이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조합원 투표 결과는 정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부산·인천·울산에서 90% 안팎의 통합 반대가 확인됐고, 4개 항만공사 모두 85% 이상이 준법투쟁 밒 파업 등 쟁의행위 참여에 찬성했다는 사실은 내부 갈등이 이미 조직적인 행동을 검토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통합의 필요성과 기대효과, 통합 이후 항만별 자율성 보장 방안 등에 대해 설득력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조직개편에 속도를 낼 경우 갈등은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항만은 국가 수출입 물류의 핵심 기반시설이라는 점에서 실제 쟁의행위가 현실화할 경우 파장은 일반 공공기관의 노사갈등과 차원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통합의 속도보다 먼저 통합의 필요성과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항만공사 구성원과 지역사회, 항만업계가 참여하는 공개적인 논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역에서 반대하고, 항만업계가 우려하고, 이제는 항만을 직접 운영하는 내부 구성원들마저 압도적인 수치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기존 통합 방안을 그대로 밀어붙인다면 향후 논란의 초점은 ‘항만공사를 통합해야 하는가’를 넘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통합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항만공사 노동조합에 따르면,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정부가 통합을 강행할 경우 오는 9월 중순께 재경부 청사 앞에서 상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전국 4대 항만공사 직원들 수백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투쟁이 예고되는 가운데, 파업 사태까지 이어진다면 항만 운영은 물론, 대한민국 항만 이미지 추락과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