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컬럼/ 호르무즈 앞에 멈춘 한국…“원칙 없는 관망”이 가장 큰 리스크다
데스크컬럼/ 호르무즈 앞에 멈춘 한국…“원칙 없는 관망”이 가장 큰 리스크다
  • 해사신문
  • 승인 2026.05.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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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윤여상 / 경영학박사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세계 질서의 급소가 됐다. 중동 전쟁과 이란의 사실상 봉쇄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전 세계 에너지·해운·조선·외교안보 시스템은 단 하나의 좁은 해협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핵심 관문이자 LNG 수송의 전략 요충지인 호르무즈가 막히자, 유가·가스 가격·보험료·운임·선복 공급이 동시에 출렁였고, 각국은 이제 ‘자유항행’이 더 이상 자동 보장되지 않는 시대를 마주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지정학적 충격 앞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원유와 LNG의 절대 다수를 중동 해상교통로에 의존하는 대표적 해양무역국이다.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는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니라 국가 산업 기반과 직결된 생존 문제다. 그런데도 현재 우리는 미국 주도의 해양안보 재편, 유럽식 외교 조율, 중동 산유국과의 실리 외교 사이에서 명확한 전략적 좌표를 제시하지 못한 채 사실상 ‘결정 유예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의 행보는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 위기를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질서 재편의 문제로 보고 새로운 다국적 협의체 구상에 나서고 있다. 동맹국에 해상안보 기여를 요구하고, 비협조국에는 군사·경제적 압박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독일에 대한 주둔 미군 감축 및 관세 압박 경고는 단순한 유럽 문제가 아니다. 이는 동맹의 비용과 책임을 재조정하겠다는 미국식 신호이며, 주한미군을 둔 우리 역시 이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즉, 우리나라가 계속 전략적 모호성만 유지할 경우 “안보는 미국, 경제는 실리”라는 기존 이중 구조가 더 이상 용인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군사적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 해군 전력의 중동 직접 개입은 국내 정치·안보 부담이 크고, 이란과의 관계, 선원 안전, 국내 여론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참전’ 논리로 접근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핵심은 군사 개입 여부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어떤 원칙과 전략 아래 자국 선박·선원 보호, 에너지 안보, 국제사회 내 외교적 존재감을 확보할 것인가다.

이 점에서 일본은 분명 대비된다. 일본 총리가 직접 이란 대통령과 통화하며 외교 채널을 가동했고, 결과적으로 일본 유조선은 호르무즈를 통과했다. 물론 일본의 성공이 전적으로 외교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국가 최고위급이 직접 움직이며 에너지 안보를 국가전략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수많은 선박과 선원들이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사실상 발이 묶여 있음에도, 국제규범과 원론적 입장 표명 이상의 전략적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운업계와 산업계가 느끼는 불안은 단순한 물류 지연이 아니라 “국가가 결정적 순간에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지금 우리 정부에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호르무즈를 에너지·해운·조선·안보를 통합한 국가전략 의제로 격상해야 한다.
산업통상부, 외교부, 국방부, 해양수산부가 분절적으로 대응할 사안이 아니다. 특히 해상운송의 주무부처인 해수부는 어떤 역할도 방안도 내놓지 못하는 부처로 전락한 상황이다.  

둘째, 미국 주도 협의체 참여 여부와 별개로 ‘한국형 해양안보 기여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직접 군사개입이 아니더라도 호위, 정보공유, 후방지원, 외교조정 등 선택지는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존재감이다.

셋째, 이란·걸프 산유국·미국·유럽을 동시에 아우르는 다층 외교를 가동해야 한다. 조선·LNG·원유·방산·재건 참여까지 고려하면, 종전 이후 한국의 중동 영향력은 지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호르무즈 사태는 단순한 해협 봉쇄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무역국가’를 넘어 ‘전략국가’로 행동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사건이다. 지금처럼 결정을 미루면 가장 큰 비용은 군사개입이 아니라,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 채 타국의 결정에 휘둘리는 것이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호르무즈 위기를 남의 전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국가 해양안보 체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결단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해양국가에게 가장 위험한 선택은, 방향 없이 표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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