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극항로, ‘선점 경쟁’보다 먼저 갖춰야 할 것들
기고/ 북극항로, ‘선점 경쟁’보다 먼저 갖춰야 할 것들
  • 해운산업팀
  • 승인 2026.02.0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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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행 시마스타 대표 /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졸업, 전 한진해운 법무보험팀

 

최근 포항·부산·여수 등 주요 항만 지자체를 중심으로 북극항로 취항과 관련한 포럼과 회의가 잇따르고 있다. 각 지자체가 앞다퉈 ‘북극항로 선도 도시’를 자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실제 외항선주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북극항로는 정치적 구호나 지역 개발 논리만으로 열 수 있는 항로가 아니다. 선박이 북극항로에 진입하는 순간, 선주는 선박보험 약관상 Institute Warranty Clause(I.W. Clause)라는 중대한 장벽과 마주하게 된다. 북극해는 통상 Institute Warranty Limits(IWL)를 벗어나는 항행 제한 구역에 해당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선박보험 담보는 자동으로 중단된다. 담보 유지를 위해서는 보험자의 사전 동의와 함께 추가보험료(Additional Premium)를 납부하고 확장담보(Cover Extension)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국내 선박보험사(현대해상,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는 이러한 위험을 단독으로 인수하지 않는다. 코리안리(Korean Re)를 거쳐 다시 영국 보험시장의 재재보험자, 주로 Lloyd 신디케이트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극항로는 아직 통계적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고위험 항로다. 재재보험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리스크 평가가 어렵고, 그 결과 할증요율 제시 자체를 꺼릴 가능성이 크다.

만약 재재보험자가 요율 제시를 하지 못한다면, Korean Re도, 국내 보험사도 선주에게 보험조건을 제시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북극항로 취항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설령 보험 인수가 가능하더라도, 선박의 아이스 클래스(Ice Class) 수준, IMO Polar Code 준수 여부, 보험자가 요구하는 추가 안전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상당히 높은 할증요율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선박보험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극항로에서는 유빙 충돌로 인한 선체 손상, 연료유 유출 등 대규모 환경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이에 대비하는 것이 P&I 보험(Protection & Indemnity)이다. 북극항로 취항을 위해서는 가입된 P&I Club으로 부터도 사전에 보험담보에 대한 명확한 확인을 받아야 한다. 즉, 적합한 Ice Class 선박 확보, Polar Code 준수, 보험자가 요구하는 각종 안전조치를 충족하지 않고서는 항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북극항로 취항을 논의하기에 앞서 명확한 제도적·보험적 Scheme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해운업계를 대표하는 해운협회, 재보험의 핵심 축인 Korean Re, 그리고 해양수산부, 재정경제부 등 관계 부처가 선주 입장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준비 없이 지자체별로 포럼과 회의만 난립하는 현 상황은 자칫 ‘Storms in a Cup’, 즉 소모적인 논쟁에 그칠 위험이 크다. 북극항로는 결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사계절 상시 항로가 아니며, 신뢰할 수 있는 해도 확보도 쉽지 않고, 유빙 이동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등 수많은 리스크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보험자들이 위험을 평가할 수 있을 만큼의 운항 실적과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선적항과 양하항을 결정하는 주체는 지자체가 아니라 선주다. 특정 항만이 북극항로의 ‘거점’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해운 실무를 간과한 발상에 가깝다. 과연 해당 지자체들이 Lloyd 보험자를 직접 만나 북극항로 리스크에 대해 논의해 본 적은 있는지, 항로 인프라와 보험 구조를 면밀히 검토한 적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차원의 중장기 전략 아래 지자체와 민간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과열 양상은 ‘설익은 감을 먼저 따 먹으려는’ 조급함으로 비칠 수 있다. 

북극항로는 선점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한 검증과 단계적 시범 운항을 거쳐야 할 고난도 프로젝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차분한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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