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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극항로를 대비하라⑤…정보와 판단력의 항해, 거리 단축 아닌 리스크 확장의 시대
기고/ 북극항로를 대비하라⑤…정보와 판단력의 항해, 거리 단축 아닌 리스크 확장의 시대
  • 해사신문
  • 승인 2025.07.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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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황호 선장/ 전국외국인근로자사회적협동조합 감사 및 전 해운선사 대표


'북극항로'는 앞으로 글로벌 해운산업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이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대통령선거의 주요 공약으로도 여야가 주목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비는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이와 관련한 선원들의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다. 선장 출신인 전문가로부터 이와 관련한 조언을 본지에서 8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재난 속에서 해운업계는 뜻밖의 기회를 맞이했다. 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는 새로운 항로는 최대 40%의 항해 거리 단축과 함께 연료 비용 절감, 탄소 배출 감소라는 유인책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지름길’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고난도의 항해 전략과 환경 대응 능력을 요구하는 길이다. 거리의 단축은 곧 리스크의 확장을 의미한다.

쇄빙선, 새로운 항해 문화의 중심

북극해항로(NSR)를 항해하는 선박에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벽은 얼음이 아니라 쇄빙선과의 항해 질서다. Ice-Class IA 이하의 선박은 필수적으로 러시아의 쇄빙선 호위를 받아야 하며, 쇄빙선의 지시 체계 아래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단일 행렬(single file)’ 항해를 해야 한다. 선박 운항의 자율성이 제한되는 이 체계는 선장에게 완전히 다른 항해 전략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신. 쇄빙선과의 협조를 위한 표준 해사통신어(SMCP) 숙지, 작업 채널 설정, 통신 장비의 이상 유무 점검은 항해의 생명줄이 된다. 러시아 수역에서는 통신 하나가 곧 항로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지을 수 있다.

북극해 통신의 사각지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역설

AIS, VHF, ECDIS… 현대 항해사들이 의존하는 대부분의 디지털 항법 시스템은 극지방의 환경 앞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일부 해역에서는 위성 수신이 불안정하고, 육상 수신기 기반 AIS는 커버리지를 벗어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선장은 이 공백을 레이더 오버레이와 전통 항해 기법으로 메워야 한다. 전자항법 시스템과 아날로그 감각의 병행, 즉 '하이브리드 항법 능력'은 북극항로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 역량이다. 항해사들은 다시 나침반과 망원경을 손에 쥐어야 한다.

실시간 기상정보와 빙정보, 정보의 질이 생존의 열쇠

북극해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해빙이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강풍과 해무가 시시각각 시야를 가린다. 따라서 Barents Watch, NSR Portal, NASA Worldview 등 다채로운 기상정보 채널의 활용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보의 다양성’이다. 단일 소스에 의존할 경우, 위성 이미지의 시차나 오류로 인해 치명적인 판단 미스를 유발할 수 있다. 선장은 복수의 데이터 소스를 크로스체크하고, 각 항해 당직자에게 최신 정보를 분산 배포하며, 주기적인 경로 재설정을 실시해야 한다.

백야와 극야, 인간 감각의 시험대

북극에서는 자연현상도 항해의 변수다. 24시간 햇빛이 지속되는 백야와, 전 구간이 어둠에 잠기는 극야는 선장의 시야와 판단력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 백야는 밝지만 해무와 빛의 산란으로 거리를 왜곡시키며, 극야는 해빙 가장자리조차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때 ARPA, AIS 거리 알람, 레이더의 Ice Edge Discrimination 기능이 핵심 도구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의 감각적 판단을 대체하지 못한다. 복수 감시자 운영, 감시주기 단축, 육안 관측 체계의 유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은 돕고, 판단이 지배한다

북극항로에서 선장의 역할은 단순한 조정자가 아닌 종합적 전략가다. 정보를 수집하고, 장비 상태를 검토하며, 극지 환경과 선박 기술, 그리고 선원들의 역량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 항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항로는 열려 있어도, 판단은 선장이 한다." 이 말은 북극해에서 더욱 명징한 진실로 다가온다. 길이 있더라도 그 길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정보, 기술, 장비—이 모든 도구를 넘어서 선장의 판단력과 책임감이야말로 북극항로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항법 장치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과 인간성, 전략과 직관이 교차하는 고난도의 항해 경로다. 이 항로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선장과 항해사들은 '길을 찾는 자'가 아닌 '판단하는 자'로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북극은 여전히 차갑지만, 그 속을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뜨거운 전문성과 판단력을 갖춘 자뿐이다. 그때 비로소, 북극은 우리에게 진정한 미래가 될 것이다.

<신황호 선장은 1957년 생으로 국립목포해양대학교(옛 목포해양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최근까지 유조선 선장으로 승선했다. 해운선사 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전국외국인근로자사회적협동조합 감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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