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양대 해협 동시 차단 현실화하나…세계 해운 ‘최악의 시나리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데 이어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의 남쪽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차단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글로벌 해운시장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동시에 차단될 경우 페르시아만의 원유·가스 수송로와 수에즈운하를 연결하는 아시아·유럽 항로가 함께 막히게 된다. 국제 해운과 에너지 공급망의 양대 급소가 동시에 위협받는 전례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5일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후티 반군이 이란을 대신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뿔 지역으로 영향력을 조용히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예멘의 바브엘만데브 동북쪽 연안을 장악한 후티는 소말리아 무장단체 알샤바브와 연계해 해협의 양쪽을 통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후티와 알샤바브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협력 징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란이 향후 결정을 내릴 경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완전히 통제하고 봉쇄하는 것이 협력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후티가 이란을 대신해 알샤바브 측에 무인기 기술을 이전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이 같은 협력의 구체적인 규모와 실제 봉쇄 작전 준비 여부는 독립적으로 완전히 확인된 것은 아니다. 후티와 알샤바브가 이념과 종파, 지역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조직이라는 점에서도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공동작전이 가능한지를 놓고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후티가 과거 상선 공격을 통해 홍해 항로를 사실상 마비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보도를 단순한 위협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티는 가자전쟁 이후 홍해와 아덴만을 운항하는 상선을 미사일과 무인기, 무인수상정으로 공격해 주요 글로벌 선사들이 수에즈운하를 포기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으로 우회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 해군 작전에도 불구하고 선사들의 대규모 우회 운항은 장기간 이어졌다. 이란의 무기와 기술 지원은 후티가 홍해와 바브엘만데브에서 원거리 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와 아덴만, 인도양을 연결하는 폭이 좁은 핵심 해상교통로다. 이 항로를 지나 북상한 선박은 수에즈운하를 통해 지중해와 유럽으로 진입한다.
연간 세계 해상교역의 약 10~12%가 바브엘만데브와 연결된 항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곳이 막히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컨테이너선과 자동차운반선, 탱커, LNG 운반선은 희망봉을 돌아가야 한다.
희망봉 우회는 항로에 따라 운항 기간을 수일에서 2주 이상 늘리고 연료비와 용선료, 선원비, 보험료 부담을 끌어올린다. 선박 회전율 저하로 실질적인 선복량도 줄어들어 컨테이너 운임과 에너지 운송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텔레그래프가 인용한 소식통은 이번 구상이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방식으로 바브엘만데브를 완전히 통제하려는 이란과 후티의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가까운 이란 매체들이 공개한 전략 구상에서도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중동전쟁 확대 시 활용할 수 있는 제2전선으로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함께 압박해 적대국의 금융·물류 흐름을 차단하고 세계 무역에 충격을 가한다는 구상이다.
로이터도 이란이 호르무즈에 이어 후티를 활용해 바브엘만데브를 새로운 압박 지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티가 실제 봉쇄에 나설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란이 당장 바브엘만데브 봉쇄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미국의 군사작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까지 동시에 차단하면 미국과 유럽,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대규모 군사 대응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으로서는 후티 카드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예비수단으로 남겨둘 가능성이 있다.
후티 역시 이란의 단순한 대리세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이란의 지원을 받지만 예멘 내전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자체적인 지역 패권 구상에 따라 독자적으로 행동해 왔다. 바브엘만데브 봉쇄가 이란의 대미 압박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후티의 보복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후티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높아진 것도 바브엘만데브 위기를 현실화할 수 있는 변수다.
사우디 측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은 지난 13일 이란 항공기의 착륙을 막겠다며 사나 국제공항 활주로를 공격했다. 후티는 이에 대응해 사우디 남부를 향해 미사일과 무인기를 발사했으며, 사우디는 이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격은 2022년 이후 유지돼 온 사실상의 휴전이 흔들리는 중대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후티와 사우디의 교전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홍해와 바브엘만데브를 통과하는 사우디 원유 수송선과 서방 연계 선박이 다시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운송하는 동서횡단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역시 호르무즈 봉쇄 이후 얀부에서 원유를 적재해 홍해를 통과하는 대체 수송로를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바브엘만데브까지 위험해질 경우 한국 정부가 어렵게 확보한 홍해 원유 대체 항로도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현재 한국 선박들은 얀부에서 원유를 적재한 뒤 홍해를 남하해 바브엘만데브와 아덴만을 지나 국내로 향하고 있다. 후티가 해협을 봉쇄하거나 선박 공격을 재개하면 한국 원유선은 후티의 미사일과 무인기 사정권을 통과해야 하며, 호르무즈를 대체할 사실상의 해상 수송로마저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가 동시에 봉쇄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의 원유와 LNG가 아시아 시장으로 빠져나오는 관문이다. 반면 바브엘만데브는 홍해와 수에즈운하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핵심 통로다.
두 해협의 기능은 다르지만 동시에 차단될 경우 충격은 서로 증폭된다.
페르시아만 원유와 LNG의 수출이 제한되는 동시에 사우디 얀부항과 홍해를 이용한 대체 수송도 어려워진다. 컨테이너선은 수에즈 항로를 포기해야 하고, 탱커와 가스선도 희망봉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경우 국제유가와 LNG 가격, 비료와 석유화학제품 가격, 컨테이너 운임이 동시에 오를 수 있다. 운항 거리 증가로 선박 공급이 줄고 항만 기항 일정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연쇄적인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호르무즈 봉쇄에 대응해 홍해 수송로를 확대하고 있지만 바브엘만데브까지 막히면 비축유 방출과 미국·중남미·서아프리카산 원유 도입 확대 등 추가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
해운업계도 홍해 항로 재개 기대를 다시 접어야 할 수 있다.
최근 머스크 등 일부 글로벌 선사들이 수에즈운하와 홍해 항로로 단계적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후티의 봉쇄 준비설과 사우디·후티 간 교전 재개로 안전성에 대한 판단을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이 커졌다.
후티가 실제 공격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전쟁위험보험료 상승과 선원 안전 우려만으로 선사들이 다시 희망봉 우회에 나설 수 있다.
텔레그래프 보도는 아직 구체적인 봉쇄 시점이나 작전 계획이 확인된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후티가 이미 홍해 항로를 실질적으로 마비시킨 전력이 있고, 이란이 바브엘만데브를 제2전선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해운업계가 경계해야 할 중대한 위험 신호로 볼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바브엘만데브까지 막히면 중동전쟁은 더 이상 지역 분쟁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 에너지 공급망과 수에즈 중심의 해상교역체계를 동시에 겨냥하는 ‘글로벌 물류전쟁’으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우리 정부도 호르무즈 안쪽에 남아 있는 우리 선박과 선원의 안전뿐 아니라 홍해를 운항하는 원유선과 상선의 안전대책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선박별 실시간 모니터링과 위험해역 통항 지침, 군사·외교 채널을 통한 안전정보 공유, 대체 원유 조달계획까지 포함한 복합 대응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