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후화된 미 해군 전력을 재건하기 위해 한국 조선기업과의 협력을 검토하고 해외에서 건조된 선박을 구매할 가능성까지 직접 언급했다. 미국 함정의 해외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해 온 장벽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통령이 한국 기업을 특정해 거론하면서 한·미 조선협력이 유지·보수·정비를 넘어 함정 건조와 조달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칼라일의 육군전쟁대학에서 열린 ‘펜실베이니아 국방·혁신 서밋’에서 미 해군력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과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일부 기업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 기업은 미국과 선박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며 “미국 밖에서 만들어진 일부 선박을 구매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지만 함정이 노후화하고 있으며, 미국이 오랜 기간 조선산업에서 사실상 물러나 있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한 ‘미국 밖에서 만들어진 선박’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범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상선이나 비전투 지원함을 뜻하는지, 한국에서 건조한 전투함까지 포함하는지는 추가적인 정책 발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 해군 재건 방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과 해외 건조 선박 구매 가능성을 연이어 언급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술자문이나 미국 조선소 투자보다 진전된 구상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국방·혁신 서밋은 미국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군과 방산기업, 투자기관, 기술기업이 참여한 행사다. 주최 측은 국방 생산능력 확대와 새로운 민간기업의 방산시장 참여, 대규모 투자 및 협력 발표를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손을 내미는 배경에는 심각한 함정 건조 지연과 조선소 생산능력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이 과거와 달리 필요한 함정을 신속하게 건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후 함정을 대체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선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조선업은 상선뿐 아니라 이지스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군수지원함 등 다양한 함정의 설계·건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짧은 건조 기간과 자동화 생산체계, 숙련인력, 대형 도크와 공급망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미국 조선산업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강점으로 거론된다.
행사에 참석한 한화디펜스USA의 마이클 쿨터 대표도 한국 조선소의 생산성과 기술을 미국에 이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한국 조선소의 높은 건조 능력을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접목해 미국 조선업의 생산 기반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한화는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거점으로 미국 내 상선과 특수선 건조 역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역시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와 공동건조, 설계·생산 기술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이 구체화되면 국내 조선업계 전반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다만 한국 조선소에서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려면 미국 법률과 정치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미국 연방법은 원칙적으로 미군이 사용할 선박과 선체·상부구조의 주요 구성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이 국가안보상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의회에 통보한 뒤 예외를 허용할 수 있는 조항도 두고 있다. 대통령의 결정이 의회에 접수된 뒤 30일이 지나야 관련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한국산 함정을 구매하려면 대통령 예외권을 행사하거나, 의회가 관련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미국 조선업과 노조, 의회의 자국 우선주의를 고려하면 전투함 전체를 한국에서 완성해 인도하는 방식보다는 한·미 조선소 간 분업이 우선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선체 블록이나 일부 모듈을 제작해 미국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하거나, 한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에 자동화 설비와 생산관리 기술, 전문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군수지원함과 보급함 등 비전투함부터 공동건조를 시작한 뒤 전투함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는 단계적 접근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 조선업 재건의 중심에 한국 기업을 공식적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미 조선협력이 기존의 함정 MRO와 미국 조선소 투자 단계에서 공동생산과 직접 조달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정책 신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건조 함정 구매가 확정됐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려면 함종과 물량, 건조 장소, 현지 생산 비율, 기술보호, 보안 인증, 미국산 장비 사용 조건 등을 둘러싼 후속 협상이 필요하다.
국내 조선업계로서는 미국 내 생산기반 확충과 한국 조선소의 건조 능력을 결합하는 구체적인 패키지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함정을 단기간에 공급하면서도 현지 일자리와 조선산업 재건에 기여한다는 해법을 제시해야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한국 기업을 직접 거론하면서 K-조선은 미 해군 함정시장 진입을 위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향후 미국 정부가 대통령 예외권이나 법 개정을 통해 해외 건조의 문을 실제로 열지, 한국 조선업이 미국 함정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