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글로벌 해상교통로(SLOC) 불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해군 제독 출신 정동조 예비역 준장이 대한민국이 국제해협 보호를 위한 새로운 글로벌 해양안보 레짐 구축을 주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순한 군사 대응을 넘어 국제해협을 ‘공공재’로 규정하고, 소해·항로안전·해저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상설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기고를 통해 정 전 제독은 ‘국제해협 이니셔티브(International Strait Initiative·ISI)’ 구상을 제시하며, 호르무즈 해협 사태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전 세계 해상물류 질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제독은 특히 휴전 협상과 별개로 기뢰 제거라는 특수성 때문에 해협의 안전통항 복구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사일과 공습은 중단돼도 해저 기뢰는 위치 확인과 제거, 시험 항해까지 거쳐야 하므로 해상교통 정상화는 훨씬 더디다는 것이다. 그는 “호르무즈처럼 한국 원유 수입의 핵심 동맥이 외부 변수에 의해 장기간 마비될 수 있는데도 우리는 스스로 직접 조치할 수 없는 구조”라며, 능력 있는 국가들이 상시적 국제 기구를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핵심 문제의식은 미국의 해양질서 유지 기조 변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 해상교통로 보호를 사실상 주도해온 미국이 최근 호르무즈 위기에서 ‘수혜국 중심의 관리’를 언급한 것은 일시적 발언이 아니라 전략적 구조 변화라는 해석이다. 즉, 향후 미국의 일방적 SLOC 보장에 의존하는 시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제독은 이를 한국 외교의 기회로 봤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운송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이 해상교통로 안보 의제를 선제적으로 제안할 경우, 단순 이용국이 아닌 국제 규범 설계자(Rule-setter)로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일본이 ‘인도-태평양’ 구상을 외교 어젠다로 선점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도 국제해협 보호 레짐을 통해 외교·통상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ISI의 기본 원칙은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호르무즈·말라카 등 국제해협을 특정국의 통제 대상이 아닌 국제 공공재로 재정립해 보편적 통항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둘째, 미국 의존 축소 흐름에 맞춰 경제 규모에 비례한 책임 분담 구조를 마련해 한국 등 주요 해양국가가 능동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해저 지형·항로·소해 정보를 디지털 트윈 기반으로 표준화·공유해 기뢰 탐지와 항로 복구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기술 협력 체계다. 넷째, 소해 전력을 병원선과 유사한 ‘국제항로 복구 임무 자산’으로 규정해 공격 금지 대상화하는 인도적 접근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정 전 제독은 ▲정책 결정과 기금 운용을 맡는 국제해협위원회(ISC), ▲소해와 항로 복구를 담당하는 소해 및 항로안전센터(MCNSC), ▲해저 데이터 축적·표준화를 담당하는 해저정보관리국(SMDA) 등 3대 조직 구조를 제안했다.
적용은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을 우선 파일럿 수로로 삼고, 이후 남중국해·동중국해 및 기타 글로벌 초크포인트로 확대하는 단계적 방식이 제시됐다.
정 전 제독은 특히 중국에도 ‘국제적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교역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인 중국 역시 SLOC 안정성에 대한 구조적 책임을 져야 하며, 호르무즈를 시험무대로 삼아 향후 동중국해·남중국해까지 협력 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해사안보 관점에서 이번 제안은 단순 군사동맹이나 개별 해군력 경쟁을 넘어, 글로벌 해상교통로를 국제 제도와 데이터 기반으로 보호하자는 ‘해양 거버넌스’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호르무즈 사태가 보험료·운임·에너지 가격·공급망 전체를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해협의 제도화된 안전보장 장치는 해운·조선·에너지 산업 전반의 전략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정 전 제독의 ISI 구상은 “미국 이후 시대”의 해상질서 변화 속에서 한국이 단순 통항국을 넘어 국제 해양질서 설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던진다. 호르무즈 봉쇄가 한국 경제의 급소를 다시 확인시킨 지금, 해양국가 대한민국의 전략적 선택지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