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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의 세상보기/“충무공 정신”
보해의 세상보기/“충무공 정신”
  • 해사신문
  • 승인 2015.05.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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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 물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나 자신의 노력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시쳇말로 태어날 때 금수저를 물고 나오는 사람도 많다. 만수르하면 누구나 아는 중동의 대부호다. 그의 자녀를 두고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만수르였다'는 말로 부러워한다.

인터넷에 삼성의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아들이 마트에서 승강이를 벌이는 사진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사진을 두고 세간에서는 아들이 무얼 사달라고 하자 그냥 마트 전체를 사주겠다고 달래는 모습이라고 풍자하기도 했다. 역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부진 사장의 아들에 대한 부러움이다.

부자들의 자녀만 그런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신분이 정해져 버리는 일도 있다. 최근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에게서 태어난 공주가 그렇다. 영국의 왕가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왕손이 태어났다고 호들갑을 떨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그 행사가 더 심하다.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로 이름 지워진 아이가 왕자가 아닌 공주이기 때문이다. 공주가 태어나기를 무려 25년이나 기다렸다고 하니까 그럴 법도 하겠지만, 영국이 집권 여당이 참패할지도 모른다는 선거 이슈를 뒤로 미루고 공주의 탄생에 열을 올릴 정도면 영국 국민의 기대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공주 하나 태어났다고 그게 무슨 대단한 잔치 분위기냐 하겠지만, 그 경제적 효과가 엄청나다고 한다. 공주가 사용한 모든 물품이 판매될 예상액만 무려 한화로 1400억원 정도다. 또 공주가 여섯 살까지 영국에 주는 경제효과는 해마다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벌써 영국 항공사는 두 살 미만의 영유아에게는 항공료를 받지 않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경제효과의 기간을 여섯 살까지로 정해 놓은 것이다. 아마 영국도 우리나라처럼 여섯 살이 넘으면 미운 일곱 살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동양과 서양의 관념이 달라서 동양은 태어난 날을 많이 기억하지만, 서양은 유명한 사람의 죽은 날을 많이 더 기억한다. 동양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태어난 날을 ‘탄신일(誕辰日)’이라고 부르고 특별한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석가탄신일이다. 이날을 사월초파일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모두 음력 4월 8일이라는 생일까지 기억한다. 물론, 석가가 태어난 BC 624년 4월 8일(음력)은 지금의 4월과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인도에서 사용하는 그날을 탄신일로 정하고 각종 행사를 하고 있다. 불교를 믿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에 종교적인 행사로 유명한 것은 또 있다. 예수 탄생일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다. 말 자체가 그리스도(Christan)와 미사(Mas)를 합친 말이다. 그날을 사람들은 성탄절(聖誕節)이라고 부르고 비단 태어난 날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태어난 그 시기를 축제로 기념한다. 그래서 뒤에 절(節)을 붙여 탄신일이 아닌 성스러운 기간으로 정해 놓았다. 더러 X-mas로 쓰기도 하는데, X는 그리스어로 크리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정해놓은 탄신일은 위에서 언급한 것 말고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양력 4월 28일이고 버젓이 달력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장군이라고 여러 차례 군인들에게 각인시킨 까닭에 유일하게 해군에서는 많은 행사를 주최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현충사 경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국가적 행사로 지정했고, 1968년 서울 광화문에 충무공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가 충무공 탄신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석가나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는 정신적 지주라면 충무공은 우리나라를 존재하게 만든 위대한 우리의 영웅이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세종대왕이나 율곡처럼 지폐에 인물상을 넣어 찍을 정도의 훌륭한 사람들은 있다. 그러나 그들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고귀한 신분이 정해져서 태어나신 분도 아니다. 해양인의 한 사람으로서 충무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저 유명한 장군으로 기억되는 게 아쉽다.

이렇듯 충무공에 대한 구국정신을 높이 찬양하면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시나브로 잊히는 현실이 마치 국가 경제의 한 몫을 담당하는 조선산업이나 해양산업에 무관심해하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걱정스럽다. 일찍이 충무공은 “바다로 침입하는 왜적을 저지하는 데는 수군을 따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수군이나 육군은 그 어느 쪽도 없앨 수 없습니다. (而爲遮海寇 莫如舟師 水陸之戰 不可偏廢)”라고 말했다. 바다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사람들의 인식이 해양에도 많은 재원과 자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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