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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의 세상보기/“스님의 꼼수”
보해의 세상보기/“스님의 꼼수”
  • 해사신문
  • 승인 2015.04.1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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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에 들어갈 때 돈을 내는 경우가 있다. 비싸지는 않지만, 입장료 명목으로 돈을 내면 그 돈은 그 공원 안에 있는 사찰이나 시설물을 유지하는 경비로 사용한다. 딱히 공원에 들어설 때 돈을 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점심때 공원 안에 있는 사찰에 들러 한 끼 식사를 부탁하면 누구든 그 절에서 공밥을 얻어먹는다. 식사를 하고 나서 잘 먹었다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 스님들의 온화한 미소까지 답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장료가 사라져 버리고 누구나 그 공원에 들어갈 수 있게 모든 문을 개방해 버렸다. 그렇다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돈을 받지 않는다고 절에 오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내주지 않거나 스님이 인상을 쓰지도 않는다.

문제는 평소에 조용하게 있던 스님으로부터 발생했다. 이건희 손자가 국립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돈을 내라고 한 것이다. 어이없는 그 손자, 따지기는 했지만, 돈을 내고 공원에 입장한다. 공원 안에 있는 사찰에 들어가 다른 사람과 똑같이 밥 한 끼를 부탁했다. 뒤를 졸졸 따라온 스님이 부자는 돈을 내야 하니까 돈을 내지 않으면 밥을 줄 수 없다고 인상까지 쓴다.

스님이 말한다. ‘돈을 내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시오?’. 그 손자가 항변한다. 밥 한 끼 가지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해도 되느냐고 불쾌해한다. 스님이 물러서지 않고 말한다. ‘꼭 밥이 먹고 싶거든, 가난 증명서를 떼어 오세요.’ 오기가 발동한 이건희 손자,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그러나 서류가 너무 복잡하고 많아서 슬슬 짜증이 났다. 결국, 자존심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경상남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가난 증명서라는 게 구비서류가 만만치 않다. 한 관계자가 작심하고 서류를 준비해 봤더니 무려 14가지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건희 손자 아니라도 그 동네 말로 ‘더러버서’ 돈 내고 밥 먹을 판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구분을 하지 못한 무리함에서 생긴 해프닝(?) 정도로 넘어가야 하지만, 이게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현실이다.

문제는 국민 대다수는 복지라는 국가 혜택을 받아보지 못한 세대라는 사실이다. 공짜와는 다른 개념이 복지다. 절대 공짜가 아니다. 보험처럼 십시일반 세금을 모아서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게 복지다. 복지의 사전적 용어는 ‘행복한 삶(福祉)’으로 되어 있고 영어로는 웰페어(Welfare)로 쓴다. 영어의 의미로 본다면 다분히 보호해야 하는 대상과 함께 많이 사용한다. 언제나 인칭 대명사 다음에 붙고, 특별히 어린이나 노인이라는 단어 다음에 많이 붙여 사용한다.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좀 불쌍해 보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 웰페어가 발전하면 비로소 행복(Welbeing)이 되는 것이다. 요사이 우리가 좋은 음식을 가려 먹을 때 웰빙 음식이라고 하는 그 웰빙이 바로 그것이다. 잘 먹는 게 행복이라면 억지라고 할 수 있지만, 복지는 이렇듯 행복으로 가기 바로 전 단계다. 복지조차 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좀 성급한 작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라는 영화는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다.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면 보험의 성격에 따라 치료가 되는 손가락이 있고,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손가락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가상의 영화가 아니다.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다큐멘터리영화다. 빌어먹을, 미국에도 이건희 손자 손가락이 있고 가난 증명서를 떼어 와야 치료가 되는 손가락이 있는 모양이다.

이와 달리 영국에서 시작되어 북유럽으로 퍼져 나간 복지 제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에서 강조된 대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를 강조하기에 보편적 복지라고 하며, 보편적 복지를 위한 대대적인 복지 투자를 할 경우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보기에 복지 정책이 모두에게 유익한 사회를 만들도록 한다는 점에서 역동적 복지라고도 한다. 주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복지 예산은 공짜가 아니다. 선진국은 월급의 50% 정도를 세금으로 내는 때도 있다.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경우는 과다하게 혜택을 주는 복지 때문에 사람들이 나태해 지는 소위 말하는 ‘복지병’을 우려하는 것이다. 돈이 없다는 실질적 고민은 언제나 뒤로 감추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또 보수 집단이나 진보의 진영논리로 따지는 것도 위험한 생각이다. 복지병을 걱정하는 것은 복지 제도 자체가 미흡한 우리나라에서는 시어머니 무서워 시집 못 가는 노처녀와 같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스님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스님-!, 밥 가지고 장난하지 마시고, 이건희 손자에게도 밥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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