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4-26 12:18 (금)
파리채를 드는 것도 폭력이다
파리채를 드는 것도 폭력이다
  • 해사신문
  • 승인 2012.06.20 05: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요사이 신문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이슈가 사람들의 생각을 답답하고 귀찮게 한다. 하나는 지겹도록 들어온 이념논쟁, 속칭 빨갱이 논쟁이 그것이요, 또 하나는 대구에서 자살한 학생의 왕따 문제가 그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모두 발생하지만, 특히 대구에서만 열 번째라고 하니까 이슈가 될 법도 하다. 이념 논쟁이야 분단국가에서 있을법한 이야기고 개개인의 성향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크게 다룰 수는 없지만, 왕따를 당해서 자살까지 하는 일은 살만큼 살아온 기성세대에게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한번 다뤘던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문제와도 상당히 그 질이나 깊이에서 차이가 난다. 고등학생, 심지어 더 어린 나이인 중학생이 자살하는 사회적 현상은 절대 내버려둬서 될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은어도 아니고 사전에 버젓이 등록되어 사용하는 ‘왕따’란 단어는 ‘왕 따돌림’의 준말이다. ‘따’는 일반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을 부르는 말로, 학생들 사이에서 부르는 용어도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서 그저 알 수 있는 ‘따돌이’, ‘따순이’는 따돌림을 당하는 남, 여학생을 구분하는 말이고, 집안에서 따돌림당하는 ‘집따’ 전교생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전따’, 그리고 개인적으로 따돌림당하는 ‘개따’라는 게 있다고 하니 따돌림당하는 애들이 그만큼 많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현상이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에서도 이지매(いじめ)라고 해서 학대당하거나 집단 폭행을 당하는 이야기는 있다. 역시 일본도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나라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불링(Bullying)이나 모빙현상(Mobbing)은 있다. 불링은 주로 학교에서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리고 모빙은 직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둘 다 집단 괴롭힘을 언급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문제는 영어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나 ‘~ing'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나 일본과 다르게 자살보다는 총기를 들고 가 잔인하게 복수하고 가해자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만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왕따는 좀 논외로 하자. 그들은 학생신분과 다르게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들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할 때 몇 가지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집요함이다. 따돌림의 가해학생들이 끈질기게 피해학생을 괴롭히고 소외시킴으로써 결국에는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매우 강한 집요함을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는 따돌림의 형태나 수법, 그리고 괴롭히는 언행의 내용이 매우 음습하게 이루어지고, 점차 집단화의 정도가 심화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따돌림이 학생들 간에 집단적으로 그리고 은밀히 이루어져 교사가 쉽게 눈치 채지 못하게 된다. 셋째는 가해학생들이 별 죄의식 없이 따돌림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즉, 따돌림에 동조하고 개입하는 것을 그저 한 번쯤 할 수 있는 장난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넷째는 전혀 저항할 힘이 없는 장애아나 지체부자유아를 대상으로 할 정도로 따돌린 정도가 매우 잔인하다는 것이다. 끔찍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5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의 수치를 보면,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11%(중학생 13.8%, 고등학생 8.7%)로 나왔다. 특히 중학교 남학생은 16%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응답하는 학생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가 교사들이 지켜보는 학교의 교실 안에서 이루어졌고 학생들 스스로 따돌림을 수치로 생각하여 정직하게 답하지 않은 학생이 있을 거란 것을 고려한다면, 훨씬 많은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그런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신이 무력해서 그렇다고 포기해 버리고 사는 경우다.

집단 따돌림은 사고가 터진 이후에 특별한 조처를 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예방이 우선이다. 상담부서를 활성화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외국은 학생들 사이에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또 각 교실은 물론이고, 음습한 지역에 CCTV를 설치하여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관리해야 한다. 교사는 언제나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의 피난처요 가해자를 언제나 엄격하게 관리는 제도도 필요하다.

요사이 부모들은 자식을 무슨 귀한 보물 키우듯 하는 시대다. 속된 표현으로 정부에서는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고 게거품을 물고 있지만, 많이 낳아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물며 많지도 않은 자녀가 제대로 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혹시 내 자식이 왕따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 특별히 먼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선원들이 자신의 아들, 딸들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또한 칼로 폐부를 찌르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의 자녀만이라도 절대 따돌림당하는 일이 없기를 소원해 본다. 왕따,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필자도 요새 집에서 왕따다. 제발 늦게 들어 온다고 그 죽일 놈의 파리채 좀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