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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해사신문
  • 승인 2012.05.21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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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양인의 종류는 딱 두 가지다. 어부와 선원이다. 고대로부터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보면 배를 몰고 가는 선원의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그 시절에도 오랜 항해에 고생했을 선장의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당시의 지적항해 능력이 오늘날 조선(漕船: 배를 운항하는 기술)의 기초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특별하게 주목받거나 기록되지 않는다. 그저 경험에 의해 항해술이 발달해 온 것처럼 느낄 뿐이다. 그러나 고기를 잡는 어부의 기록은 많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도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우리나라에도 어부를 노래한 유명한 고전이 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가 그것이다.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는 후렴구는 한 번쯤 들어본 사설이 분명하다. 그 말은 ‘어기여차 어기여차 노를 저어라.’ 정도로 해석한다.

국가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무역 대부분은 해상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물건을 배로 실어 나른다는 이야기다. 그런 무역의 실체적 노동자가 선원들임에도 여전히 예전과 다르지 않게 그들의 위상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기를 잡는 어민들의 생활상이나 그들의 행각에 대해서는 언론이나 여타의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다. 더러 태풍이 몰려 오거나, 녹조 현상이 발생하면 언론들은 앞다투어 그들의 피해 상황을 보도하고 그들의 생활을 알려준다. 그러나 원양어선의 선원들이나 상선의 선원들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래도 국민과 직접적으로 어울리기 쉽지 않은 기삿거리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별문제 없이 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얼마 전 이탈리아 인근을 항해하던 여객선이 좌초될 당시는 배를 잘못 운항했던 선장이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럴 때가 아니면 선원이 이슈가 되어 주목을 받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선원들이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 탈 없이 잘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건 변명치고는 좀 빈약하다. 그보다 더 불편한 진실은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언어학자 노옴 촘스키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언어 습득 기제’(Language Acquisition Device)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도 거품이라고 현대의 학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주위의 조력이나 훈련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무인도에서 태어나 혼자 살거나 늑대인간처럼 동물들 사이에서 살게 되면 언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론을 뒷받침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시도에 의해 무표정했던 어린아이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어머니는 아이들의 조그만 반응에 무슨 대단한 의사표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더 옹알거리고 아이가 작은 행동이라도 보여 주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반응에 가장 먼저 화답하는 아이들의 행동은 웃음이다. 애가 우는 것은 다분히 생리적인 현상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지만 웃는다는 것, 그 자체는 다분히 자의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반응을 위해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어머니는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소통의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지금의 부를 누리고 사는 것은 오래전 그들이 바다를 무대로 많은 부를 축적해 놓은 결과물이다. 영국이 대표적인 나라다. 영국이 대국으로 발전하기 전 시대는 스페인이었다. 전 세계를 장악하던 그들은 막강한 해군력이 있었다. 로마시대 이후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해 버린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그때부터 영국은 지금까지도 영원한 선진국이다. 바다와 관련지어 만들어진 모든 법 조항은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제정된다. 전 세계가 그들의 법령에 지배당해 버렸다. 법령뿐만 아니다. 안전을 핑계로 만든 모든 보험을 영국이 제정하고 그들이 조정한다. 이해하기 쉽게 하나만 예를 들자. 대한민국 국민이 소소하게 들고 있는 작은 보험은 보통 대기업이나 여타의 큰 보험회사에 들지만, 그런 대형 보험 회사도 결국 영국의 보험사에 보험을 들어 놓고 시작한다. 결국, 전 세계인들이 영국에 보험을 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영국은 대단한 공업국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IT산업이나 자동차, 선박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예전에 이룩한 지적 재산만을 가지고 앞으로도 여전히 선진국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은 오래전에 바다에 투자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바다에 더 많은 투자를 해 달라거나 열심히 일하는 선원들을 더 기억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발 소통 좀 하고 살자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게 떼를 쓰고 징징거려야 하는 주체가 선원이기는 하지만 너무 자중하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실버스터 스텔론이 주연으로 등장했던 영화 람보1 에 나오는 인상적인 명대사가 있다. ‘우리가 국가를 위해 충성한 만큼 국가도 우리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였다. 거창하게 선원들이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기억되지도 못하고 생소한 직업이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은 뭔가 많이 아쉽고 안타깝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엷은 미소 한번을 얻기 위해 어머니는 끊임없이 옹알거림을 해 댄다. 어떻든 그게 시작이고 말을 하게 되는 첫 행동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옹알거림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고 끊임없어야 한다. 국가가, 그리고 해운 관련 종사자들이 기어이 미소 지을 때까지 쉬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운 미소를 받는 그날까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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