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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남자의 위대한 조작?
간 큰 남자의 위대한 조작?
  • 해사신문
  • 승인 2012.04.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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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당신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했던 일에 몇 번이나 후회를 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세상에 별의별 설문 조사가 많아서 그 용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도 필요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필자가 며칠 전 비슷한 설문지를 받았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 10가지를 적으란다. 설문지를 만든 연구진은 조사 대상 표본을 잘못 지정한 듯 보인다.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어디 후회하고 살아온 게 10가지만 될까? 설문지 문항을 100개로 만들어도 부족할 판인데.

막상 설문지를 받아들고 펜을 잡았지만,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후회스러운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거, 담배를 피우면서 끊지 못하고 있는 거, 그리고 돈을 많이 못 벌어 놓은 것 따위를 몇 개 적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차라리 설문 조사의 문항이 ‘특별히 귀하가 살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10가지를 적으시오.’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 그렇다고 필자가 올곧고 똑바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떻든 과거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는 설문 자체가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좋았던 일도 많았겠고, 또 기억하기 싫어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았던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기억이 더 오래 깊숙이 뇌 속에 각인되어 기억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일을 추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런 추억 자체도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설령 지나간 일이라도 지금에 와서 그 추억을 조금 뜯어고쳐서 옛 기억을 조작하는 일이다. 후회했던 일들을 아주 괜찮은 일이었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2011년 불멸의 영화스타, 세기의 미녀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79세로 타계했다. 추억이라는 단어에 용량이 있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대용량의 추억을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모두 미국인이었던 탓에 미국은 자국의 전설이라고 우겼고, 이에 열 받은 영국에서는 황실의 데임 작위를 내려서 영국의 전설이라고 우길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여성인지 알 수 있다. 8번의 결혼과 7번의 이혼이 그녀가 출연했던 유명한 영화보다 더 이름값을 하는 여성이다.

평생을 살면서 아랍의 왕족들이 거느린 후처들보다 더 많은 남성과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을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녀가 T.V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 있다. ‘자신은 많은 남성과 살았지만, 언제나 한 남성만을 사랑했다. 한 번도 몸을 팔지는 않았다.’ 오히려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명쾌하게 자신의 추억을 정리해 버린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 지난한 세월 동안 어찌 고민이나 갈등이 없었을까? 그저 그런 지저분한 과거조차도 아름답게 추억을 조작해 버리는 게 현명하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영원한 스타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혼 이야기가 나와서 한 분 더 소개해 보자. 대한민국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멋진 여배우가 있다. 김지미 씨다. 1940년생이니까 이제 영화인으로는 존경받을 충분한 나이다. 그분도 4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다. 그중에는 유명한 가수 나훈아와의 결혼생활도 포함되어 있다. 부산에서 나훈아 쇼를 본 적이 있었는데, 나훈아 씨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잘 하려 하지 않았다. 좀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지미 씨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월간지에 나온 인터뷰에 출연해 여러 남성과 살았던 그녀의 생각을 쉽게 정리해 버렸다. ‘살아보니 별 남자 없더라.’였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살다가 주변의 상황이 변해서 그렇게 살아지더라는 이야기였다. 똑같은 생각이지만 어찌 그녀라고 살아온 그 과거가 복잡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녀도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추억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버린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복잡한 대답을 기대한 다른 사람들이 머쓱할 정도다.

사람들은 사랑이든 또는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투쟁의 한 방법으로 여러 갈래의 길을 걸어왔다. 당연히 후회스러운 일과 자랑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절대 버리기 싫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오랫동안 바다 위에서 해기사로 일해온 그 아름답고 소중한 경험은 한 번도 후회해 보지 않은 추억이다.

특별하게 느끼는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해상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은 대 스타들처럼 긍정적으로 조작할 수 있지만, 조작도 필요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바로 바다 위에서 생활했던 그 추억이다. 그 아름다운 동경(憧憬)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안타깝다.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한 일? 이럴 때 좀 솔직해져도 되나 모르겠지만, ‘마누라 만난 것?’이라고 말하면 간 큰 남자일까? 그렇다면 추억도 조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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