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4-27 17:13 (토)
할머니들의 반란, 기부(寄附).
할머니들의 반란, 기부(寄附).
  • 해사신문
  • 승인 2012.04.09 06: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찾는 게 신문이다. 평소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요사이 그렇게 반갑지도 않은 선거와 관련된 정치기사가 도배되어 있어서 오히려 신문의 맨 뒷장부터 보는 게 버릇이 되어 있다.

다분히 필자의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솔직히 신문을 보면 정치기사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기사가 있다. 무슨 떡볶이 장사를 해서 평생 모은 돈을 후배들의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는 둥, 또는 연예인들이 무슨 공연으로 얻은 수익금을 모두 불우이웃을 도우려고 내놓았다는 기사 따위가 그렇다. 뭐 연예인이야 차고 넘치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꼭 할아버지도 아닌 할머니들이 어렵게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한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이런 젠장, 도대체 나는 여태까지 뭘 하고 살았던 거야?’ 하고 스스로 속 좁은 옹알이를 해 본다.

요사이 이렇게 필자의 기를 죽이는 기사가 연일 터져 나온다. 염소를 키워서 평생 모은 돈 1억 원을 학교에 기부한 염소 할머니는 ‘(기부한 돈이)적어서 월메나 창피했는데.’ 하셨단다. 또 있다. 자린고비로 소문난 전직 교장 선생님께서 아내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자 황급히 5억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하셨다. 그분은 ‘우리 부부 공동명의로 기부하려 했는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부인이 죽기 전에 흔쾌히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주지 않고 쾌척하셨다고 했다. 또 있다. 이름조차도 밝히기를 거부한 부산의 한 할머니는 평생 군밤장사와 노점상으로 번 돈 1억 8천만 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모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기부에 대한 문화가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태어나서 말도 하기 전부터 작은 상자를 만들어 동전을 넣게 버릇을 들인다고 하고, 토요일 오후에는 팔다 남은 식료품을 아무 말 없이 가게 앞에 놔두고 가게 문을 닫아버린다고 한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라는 행위다. 기독교 문화를 지닌 미국에서 사회봉사나 기부는 일상이 되어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기부액수가 최고인 사람은 윈도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 빌 케이츠였다. 28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30조 원이다. 얼마 전 그 기록은 투자가인 워런 버핏이 깨버렸다. 31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33조 원이다. 그 외에도 많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사람들은 기부에 약하다?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면 기부나 선행의 행위를 찾아볼 수 없다? 아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론 세계적인 평균으로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역시 기부 자체가 생활화되어 있는 그들과 이제 겨우 기부에 대한 문화를 배우면서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또 우리에게는 기부에 대한 그 선행 자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 하지 않고 감추려는 동양적 사고가 잠재적으로 깔린 것도 사실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는 성경 구절이 있지만, 오히려 서양 사람들보다는 동양인들이 그 성경 말씀에 더 충실해 보인다.

공동모금회에 따르면, 개인 기부금은 1999년 162억 원에서 지난해 868억 원으로 5.4배 늘었고, 기업 기부금도 1999년 51억 원에서 지난해 1,806억 원으로 35배 이상 증가했다. 알려진 연예인으로는 문근영(8억), 김장훈(9년 동안 30억), 박상민(가수, 10년 동안 40억) 등등이 있다. 물론 알려지지 않는 기부천사는 이외에도 많다. 또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기부 왕은 한의학계의 원로이자 대한민국 1호 한의학 박사인 류근철(82·모스크바 국립공대 종신교수) 박사가 578억 원 상당의 부동산과 소장 골동품 등을 한국과학기술원에 기부했다고 한다. 류 박사의 이번 기부액은 개인과 기업을 통틀어 국내 기부 사상 최고액수다.

기부(寄附)의 사전적 용어를 살펴보면,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으로 정의되어 있다. 길거리 노숙자가 손을 벌려서 주는 동냥이나 교회에서 하는 헌금(Donation)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개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공익이 관리하고 사용하는 게 기부금이다.

따지고 보면 월급쟁이들의 급료 중 국가에서 떼어가는 세금 이외에 조금씩 알게 모르게 떼어가는 것도 일종의 기부에 해당한다. 다만, 그 액수가 적거나 다소 정당성이 있어 보여서 그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거지에게 동냥은 줄지언정 고정적으로 유니세프에서 한 달에 만 원씩 떼어가는 세계기금조차도 낯설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바다를 알기 위해 공부했던 대학도 있고, 또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후배도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학교에 기부하는 할머니들도 있는데 더 젊은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는 그저 앉아서 남들이 하는 기부행위에 부러워할 게 아니라 기부 문화에 적응하고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새삼스럽게 혼자 또 중얼거려본다. ‘이런 젠장, 도대체 나는 여태까지 뭘 하고 살았던 거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