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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에, 바람 한번 피워 봅시다
이 봄에, 바람 한번 피워 봅시다
  • 해사신문
  • 승인 2012.04.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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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봄 처녀 제오시네-’하는 노래가 있다. 이은상 선생이 지었던 노래다. 여기서 ‘제’라는 표현은 ‘저기에’라는 뜻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봄 처녀 저기에 오시네.’라는 말이 된다. 봄이 되어 처녀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두고 한 말이 분명하다. 봄을 두고 남성들은 가타부타 토를 달지는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는 모양이다.

겨우내 추운 날씨 탓에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다가, 날이 풀린 봄날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어서 여인네들이 봄을 반기는 이유라 하겠다. 또 쑥이나 나물을 캐러 간다고 삼삼오오 들판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그 행위가 좋아서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계절에 관계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봄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것은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봄날에 여성들이 가장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고 한다. 남성들이 술에 취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어떤 모험(?)을 감행한다면 여성들은 봄의 기운에 취해 겨우내 얼었던 마음의 활짝 열어젖히는지도 모른다. 봄을 만끽하고 철이 바뀌어서 여름에 조사한 설문 조사에서조차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봄이라고 말하는 여성이 66.6%였다고 하니까 봄은 여성의 계절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고전에서 봄을 기다리는 여인이 가끔 등장하지만,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봄을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바로 ‘페르세포네’라는 여인이다. 땅속 깊숙한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억지로 지하에 끌려간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고 그곳의 시민이 돼 버린다.

당연한 결과지만, 지하세계의 시민은 땅 위로 올라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제우스에게 간곡히 부탁해서 일 년 중 반만은 지하세계에서 땅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녀는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하세계에서 올라오면 꽃이 피기 시작하고 때맞추어 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가면 꽃들은 열매를 맺고 시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만큼 봄을 기다리는 여인도 없을 것이다.

봄이 왔지만, 그 봄이 아쉬운 연인도 있었다. 중국 4대 미녀 중 한 사람인 왕소군(王昭君)의 이야기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전한(前漢) 말기, 절세미인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의 선우(왕)에게 시집을 갔다. 흉노를 달래기 위한 화친 혼인이었다.

중국에서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산과 들로 뛰어다녔을 그녀가 고향을 떠나 멀고 먼 오랑캐 땅에 들어가 처음 맞는 봄에 느낀 소회가 그것이다. 봄이 왔지만, 그녀의 가슴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처절하고 가녀린 왕소군의 봄이었다.

여인들이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또 있다. 봄이 바로 결혼식을 올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5월의 여왕(May Queen) 선발 대회도 있었다. 그만큼 봄과 여성과는 매치가 잘 되는 계절이다.

아름다운 봄의 기운을 받으며 하얀색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여인들이 바라는 꿈이다. 또 남자들은 여성들의 그 봄에 대한 발랄함과 자유분방함을 은근히 즐기는 경향도 있다. 결혼한 남자가 불륜을 저지를 때 흔히 ‘바람피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유래가 바람(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 말이 생긴 유래가 아무래도 사고를 치는(?) 남성들보다는 오히려 여성들이 몰고 오는 봄의 기운 때문이 아닌지 하는 허투는 짐작도 해 본다.

오랫동안 해운경기가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긴 겨울 동안 집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봄을 기다리는 여인네들 심정이다. 제발 꽁꽁 얼어붙은 오대양 육대주에 봄을 기다리는 여신 페르세포네가 지하로부터 올라와 천지 위에 강림하기를 고대해 본다. 그래서 그 봄꽃의 향기가 천지를 진동하는 드넓은 우리의 영지(領地)인 바다 위에 자이로 콤파스가 인도하는 무한의 세계로 봄 처녀가 나긋나긋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봄을 즐기고 싶다.

왕소군이 느꼈던 오랑캐 땅 그 황량한 봄의 벌판 같은 요사이의 해운경기에 향기 좋은 꽃가루가 날리고 그 향기를 심어 나르는 벌, 나비가 춤추는 봄날은 기어이 이 땅에도 찾아올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봄날에 무엇인들 못 할까? 빨리 봄바람이 불어서 한바탕 바람이라도 피우고 싶다. 봄날에 또 다른 봄이 그리워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봄이 온다면 바람도 피워볼 일이다. 멀리서 봄 처녀 제오시네. 그 봄 처녀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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