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4-28 18:20 (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그럼 한번 해기사는?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그럼 한번 해기사는?
  • 해사신문
  • 승인 2012.03.16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 해병대가 무려 50년 동안 사용해온 해병대 정신을 상징하는 말인데, 원래 이 말은 미 해병대에서 사용해 온 표어였다.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 그것이다. 유독 군대이야기라면 기를 쓰고 평생을 우려먹는 대한민국 남성들 특성 때문인지 실제 현역보다는 해병대에서 전역한 예비역들이 해병대 정신의 상징적인 문구로 더 많이 사용한다. 그들만의 자부심이기도 하겠지만, 육군이나 해군, 또는 공군에서 군 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무용담처럼 뿜어내는 해병대 이야기에 조금은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들에 대한 반대급부도 있다. 아침 출근길 도로에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상징인 팔각모에 군복을 입고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때가 있는데, 솔직히 좀스러워 보인다. 최소한 40대가 훌쩍 넘어 보이는 군복 입은 아저씨가 시커먼 안경까지 쓰고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은 대부분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 짓을 왜 하는지 궁금하다. 비록 대한민국 남성들이 술자리에서 마무리로 꼭 챙기는 군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시쳇말로 제대할 때 복무를 했던 지역 쪽으로는 소변도 보기 싫다는 그 군대생활을 아련한 추억이 아닌 연장을 추구하는 그들이 그렇게 썩 대단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그 영원의 틀에 갇혀 있어서 그런 게 아닌지 필자는 추측해 본다.

세상에 영원이라는 게 있기는 있을까? 물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런 건 없다. 인류가 멸망해서 모두 사라진다면 파리의 에펠탑은 300년 후에 지구 상에서 영원히 그 모습을 감춘다고 하고, 미국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은 채 100년도 되기 전에 그 흉물조차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태양조차도 그 수명이 100억 년 정도인데, 이미 50억 년 정도 지나서 우리는 태양의 가장 젊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결국, 좀 긴 세월이 지나야 하지만 태양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떤 현상이 개개인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부여받는다면 최소한의 영원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국가에서 주는 연금이든, 또는 자신이 은행에 적립한 어떤 재화가 죽을 때까지 지급되는 현상이 있다면 최소한 그 자체는 영원이라고 할 수 있다. 뭐 죽고 나서는 연금이 끊기든, 더 불어나든 상관이 없을 테니까. 어떻든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연금으로 예를 들었지만, 누구나 부여받는 주민등록번호나,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부여받은 자동차 면허, 약사면허, 의사면허 또는 여타의 자격증 따위는 한번 부여받으면 그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영원을 누리며 함께한다. 사람들은 그런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 투쟁까지 불사한다. 침(針)과 뜸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한의학자인 구당 김남수 같은 분은 침사자격 때문에 법정에서까지 그 시비를 가리기도 했다. 한평생을 침으로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시술했던 그런 사람조차 최소한의 영원으로 상징되는 그 자격증 때문에 시시비비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한번 주었던 면허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취소해 버리는 면허가 있다. 바로 해기사 면허다. 해기사 면허는 일정 기간 배를 타지 않으면 그 자격이 사라져 버린다. ‘자격증 = 최소한의 영원’이라는 등식이 무색해진다. 자동차 운전면허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체검사 정도로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 않았다고 그 자격을 박탈하지는 않는다. 의사면허를 딴 의사가 자신이 환자 진료를 하지 않고 그 면허를 박탈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해기사 면허는 배를 타지 않는다는 단순하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그 면허를 취소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복원하는 과정이 있기는 하다. 면접을 다시 봐야 한다든지, 여타의 교육을 받는 과정이 그것인데, 그러나 그조차도 시한이 정해져 있다. 예컨대 10년이 넘게 되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필기시험도 봐야 하고 나머지도 그렇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겠다. 잃었던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어서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는 골 때리는 일이 생기게 된다.

해기사가 부족하다고 징징거리는 선사가 이런 사정을 알 리도 없겠지만, 해기사들 자체적으로 그런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조직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물론 해기사협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해기사들의 복지나 이익을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 협회가 있기는 하지만, 필자는 해기사를 위한 그들의 업적이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나이 먹은 해병대 출신 전역자들은 자신들을 알아달라고 검은 안경과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영원을 홍보한다. 심지어 국정에까지 관여하며 가스통에 불을 붙여 시위까지 해 댄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사람이 그들을 기억한다. 빌어먹을, 해기사를 위해 가스통에 불이라도 붙여야 할 판이다. 배를 안 탔다는 이유로 면허조차 박탈당하는 이 험한 꼴 보면서 그도 못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