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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사고 예방에 '올인' 하는 사람들
해양사고 예방에 '올인' 하는 사람들
  • 부산=윤여상
  • 승인 2009.08.11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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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 허용범 원장 인터뷰
대담 / 정리=윤여상 취재부장

허용범 원장 본지에 고정적으로 해양사고 사례 소개키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난 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허베이스프리트호' 사건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단 한번의 선박충돌로 인해 서해 앞바다가 기름에 뒤덮였고 피해액도 수천억원에 달했다.

피해주민을 지원하고 환경을 복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을 정도이니 그 피해규모를 일일이 따져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사고 선박의 선원들이 좀더 주의를 기울여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수천억원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서 수천억원의 손해를 미리 예방했다는 것 조차 모를테지만 말이다.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안전'이다. 특히 육상과 달리 해상안전은 자칫 작은 부주의 하나가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특수성을 띠고 있다.

우리 주위에 이러한 해양사고의 발생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해양사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가적 집단에서 해양사고에 대하여 행정부의 최종 원인판단을 내리는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이들로 인해 사고가 예방되고 있어 우리가 수천억원을 절약하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막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생소할 지 모르지만 법원의 판사와 같이 해상사고에 대한 원인을 행정심판으로 규명하고 있는 국토해양부 소속 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들이 그 주인공이다.

해양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 재발방지에 기여하는 한편 사고관련당사자들이 제공한 원인의 비율도 판시하는 이들이지만 "처벌이 목적이 아니고 사고를 분석하고 차후에 그러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의 심판관의 일"이라고 말하는 15년 경력의 베테랑 심판관이 있다.

그는 해양사고를 분석한 결과 재발방지에 교훈이 될만한 사건들을 선별하고 이를 매월 인터넷뉴스레터로 손수 집필하여 선사와 해기사들에게 배포해 알리고 있다. 물론 사고 예방 차원에서다.

제45호까지 발행되도록 수년간 이 일을 그가 혼자하고 있는 것을 본 Korea P&I(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측에서 자기들이 할일을 해주니 고맙다고 보다 보기좋고 관리가 용이하도록 재편집하는 작업을 자청하고 나서서 지금 배포되는 형식의 품위있는 e-Book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가 배포하는 자료를 받아 보는 인원만도 학계, 해운업계에 1200여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꼼꼼히 사고를 분석하는지 가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본 기자 역시 그가 배포하는 뉴스레터를 읽으면서 진작부터 본지의 지면으로 그를 초대하려 했으나, 번번히 일정관계로 실패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인지 칠전팔기의 정신인지 결국 이날 그를 만날 수가 있었다.

기자가 직원의 안내로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도 역시 그는 심판정에서 심판을 마치고 나와 사고 원인 분석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지난 2005년 부산해양안전심판원장으로 부임해 4년이 넘도록 한자리에서 우리나라 동남부 영해에서 발생하는 모든 해양사고와 일본연안 그리고 인도양 서부 및 대서양 동부 공해상에서 발생하는 국적선의 해양사고의 원인분석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허용범 원장.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을 졸업한 해기사 출신으로 초대형선박의 선장을 지낸 진정한 마도로스. 해기사 재교육 산실인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창립 멤버인 교수. 우리나라 최초 PC 기반 선박조종시뮬레이터 개발자. 그리고 중고교시절의 악대에서부터 시작한 색소폰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로 수준급인 낭만적인 해양인.

그에게 수여된 자타가 공인하는 여러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허 원장은 이러한 수식어들이 초라할 정도로 해양안전 분야에 관한 단연코 최고 스폐셜리스트였다.

우리나라 유사 이래 최악의 해양오염사건으로 기록된 1995년 여수의 '씨프린스호' 사건, 2007년 중국해역에서 발생한 '골든로즈호' 사건과 같은 해 일본 동경만 입구 동남부해역에서 발생한 '오키드선호' 사건, 앞서 언급한 '허베이스프리트호' 사건. 모두가 허 원장이 주도적으로 관여해 처리하고 또 처리 중인 사건이다.

유독 대형사건만을 전담으로 처리하고 있는 허 원장은 이날도 심판정에서 오키드선호 사건에 대해 심판을 하고 나왔다고 했다.

"당시 대한민국 모든 언론에서 떠들던 오키드선호 사건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느냐"는 허 원장의 질문에 기자는 쥐구멍을 찾고 싶을 정도였다.

여타 일반 언론이 그러한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해사언론의 중추를 담당하는 본지에서 조차 외국선박과의 충돌로 16명의 전 선원과 선체가 순식간에 희생되었는데도 그 이유를 집요하게 추적해보려고 하지 않고 여타 사람들과 같이 사고당시만 시끄럽고 시간이 지나면 무관심해지는 것은 전문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너무 많은 업무에 매여서"라는 궁색한 변명은 목 아래까지 와서 되삼켜지고 말았다.

허 원장은 "해양사고가 발생하면 2~3일 반짝 관심을 갖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국민들이 해양에 관한 관심을 갖도록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어릴 적부터 해양에 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바다에 관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른들은 모두 삼면이 바다이고 현실적으로는 섬나라와 같은 나라라고 모두 입이 닳토록 되뇌이면서도 우리나라 많은 어른들과 청소년들은 "밤에도 배가 다니느냐", "쇠로 된 배가 어떻게 바다에 뜨느냐", "그 넓은 바다에서 배가 왜 충돌하느냐" 등의 질문을 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허 원장은 말했다.

초등학교 때 부터 해양에 관한 과목이나 과정을 신설해 관심을 유발시켜 인재양성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허 원장의 지론이다.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면 자연히 알아서 바다에 관해 연구하고 먹거리를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허 원장은 이러한 해양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과 무지가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설 때까지 마리나와 요트가 귀한 나라를 만드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바다라면 해수욕장만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섬나라와 다름없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이만한 국민소득이면 다른 나라 같으면 벌써 수천척의 요트가 바다에 떠 있어야 함에도 우리는 아직 해양마인드가 부족해 바다를 향한 도전과 개발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의 허 원장의 따끔한 충고.

허 원장은 "안전확보는 외견상으로는 돈을 쓰는 것이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모르면 무섭지만 알면 재미가 있지 않느냐"며 해양과 안전에 관한 그의 지론을 명확히 밝혔다.

허 원장은 "해양안전심판원이 정량적으로 성과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해양안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준사법기관으로서 권한은 반드시 제고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양안전심판원의 권고와 지적이 타 국가기관이나 민간단체 등에 실행될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진다. 이는 해양안전심판원을 위한 것이 아니고 바다에서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육해공 모든 사고의 원인규명을 담당하고 있으며 대통령 직속으로 장관급 인사가 조직을 총괄하고 있다.

한편 허 원장은 해상안전 사고에 대한 뉴스레터를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까지 만들어 보내는 이유에 대해 "해기사 출신으로 단 한명의 선원과 국민(여객)의 희생을 막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커다란 대형사고도 다수의 사고요인이 모두 다 갖추어졌을 경우에 발생을 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라도 주의를 기울이면 사고는 반드시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본지는 앞으로 허용범 원장과 공동으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해양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가칭 ‘허용범 원장의 집중분석’ 이라는 코너를 마련하고 지면을 특별히 할애하여 국민에 경각심을 심어주고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해양사고를 집중 파헤치고 원인을 분석해 이를 독자에게 알릴 계획이다.

허 원장은 선체 역학과 선박조종 시뮬레이션 등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문적인 해양사고 분석가다. 그의 예리한 분석력과 이로 인한 심판결과들을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까지 집중적으로 다뤄 이와 유사한 해양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국민의 해양 마인드도 고취시키는데 본지가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허용범 원장은

허용범 원장은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26기로 졸업하고 범양상선(현재 STX팬오션)과 일본의 상코기선 등의 해운회사에서 10여년간 승선, 초대형 선박의 선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교무과장 등을 역임하는 등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해양대에서 선체운동에 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4년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에서 처음 심판관의 길을 내디뎠다.

인천과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선임심판관을 역임한 그는 2005년 5월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장으로 부임하여 근무 중이며 그 간 처리한 사건들은 1995년의 '씨프린스호 좌초사건', 2007년 '골든로즈호와 진성호 충돌사건' 및 2007년의 '허베이스프리트호 해양오염 사건' 등이 있다.

특히 인천 및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국제해사기구(IMO)의 당시 항해안전소위원회(Nav. Sub-Committee) 한국대표단 자문대표 및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양안전심판원은

해양사고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여 재발방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치한 국토해양부 산하의 특별행정심판기관이다. 1962년 12월 해난심판법에 의해 해난심판위원회로 신설, 1971년 해난심판원으로 개칭되었다.

1999년에 해양안전심판원으로 개칭되었고, 서울의 중앙심판원과 부산.인천.목포.동해의 4개 지방심판원이 있다.

중앙심판원에는 원장이자 심판장인 국가공무원 1급의 심판관 1명과 2급 심판관 4명이 있으며, 지방심판원에는 각각 원장인 2급 심판관 1명과 4급 심판관 2명이 각각 합의제심판부를 구성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는 총 17명의 해양안전심판관이 있는 셈이다.

심판관들은 대부분 선장 및 기관장을 지낸 해양에 관한 베테랑들이 대부분이며 국내 및 국제 관련 해사법규는 물론이고 이공학적 해사기술에도 정통해 천태만상으로 다양한 해양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

해양사고 심판의 대상은 선박의 구조·설비 또는 운용과 관련하여 사람이 사망·실종되거나 부상을 입은 사고, 선박의 운용과 관련 선박 또는 육·해상 시설에 손상이 생긴 사고, 선박이 멸실·유기되거나 행방불명된 사고, 선박의 충돌·좌초·전복·침몰이 있거나 조종이 불가능하게 된 사고 등이다.

특이한 것은 심판의 목적이 사람(해기사)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한 원인규명이므로 인명과 선박이 모두 희생된 전손(全損.Total loss)사고에 대하여도 심판의 절차를 통하여 원인을 규명하도록 되어 있다.

3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심은 지방심판원에서 3명의 심판관에 의해 합의제로, 2심은 중앙심판원에서 5명의 심판관에 의한 합의제로 운영된다. 2심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대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일반 법원에서의 3심제에 비해 특수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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