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3-29 18:29 (금)
우리나라 해운이 세계 강국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소고
우리나라 해운이 세계 강국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소고
  • 해사신문
  • 승인 2018.11.02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해기사협회 제27대 회장 추형호

【해운업의 태동기】 
   우리나라 해운업은 1945년 해방 직후 국적상선이 한척도 없는 가운데 1948년 '대한해운공사'를 설립하면서 때마침 일본에서 한국에 입항한 앵도환 화물선이 좌초됨에 따라 일본소유의 Salvage선의 장비를 이용 구조하여 수리한 후 대한해운공사에서 본 선박을 매입하여 이 배를 Korea호(초대사장 김용주)로 명명하였다.
본 선박이 처녀항해를 시작하면서 원양항해 경험이 거의 없는 해기사들로 사관을 구성한 관계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매우 힘들게 태평양횡단에 성공하게 되었다.

【해운업의 도약기】
   이때 설립한 중소형 선박 회사들은 중고선을 대량 도입( 주로 원목운반선)하여 우리나라 해운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그후 한국조선업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1968년에 민영화된 (주)대한조선공사를 설립(초대사장 남궁연)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조선기술에 의해 건조한 아리랑호가 취항하게 되었으며 제2차세계 대전때 사용했던 소형 군용 화물선(FS타입)이 대선조선에 이어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에서 건조되기 시작하면서 조선업 성장과 함께 해운업도 더불어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해운업의 중흥기】
   해운업 성장과 함께 대형 선박 소요가 예상됨에 따라 고 정주영 회장은 1973년에 '현대중공업'을 설립, 세계 각지에서 활발한 수주 활동을 전개하던 중 당시 동남아에서 최대 대형 선박회사 OOCL( Orient Overseas Container Line - 홍콩소재) 총수(CY TUNG)와 (주)신한해운(현재 현대상선) 고 현영원 사장의 소개로 선박 건조 계약을 성사시켜 대량 선박건조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이에 발맞추어 대우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설립되면서 세계 제1의 조선 강국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힘입어 대형 조선중공업이 탄생함에 따라 우리나라가 한때 세계 최대 조선국으로 자리를 잡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으며, 선박을 건조함과 동시에 주로 일본에서 도입한 중고선들로 선복량이 증가되었고, 이때부터 우리나라 해운업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 동기가 되어 해운업이 활황기를 맞게 되었으나 불합리한 정부의 해운정책과 선사에서의 미숙한 경영으로  중대한 위험에 기인, 전 선박 회사가 도산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제5공화국 군사정권당시 해운업에 문외한 사람들이 무조건 선복량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선사들이 10만톤 이상 선복량을 확보하지 아니하면 정부 지원이 전무하다고하여 선사들은  무리하게 선복량을 확보하게됨에 따라 무리한 경영이 좌초되었고 또한 선사들의 미숙한 경영으로 부실을 자초하게 되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에서는 '해운산업 합리화 추진계획'으로 선박 통폐합(1984년 5월 12일자)조치를 단행하여 해운회사 활성화의 기반이 조성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세계 제5대 해운강국으로 성장발전하게 되었고 이 배경에는 정기선 해운동맹에 가입하게 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해운업의 쇠퇴기】
   그러나 2000년 중반부터 세계적인  금융위기 및 해운불황이 도래해 급기야는 우리나라 최대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도산하는 비운을 겪었으며, 우리나라가 해운 전성기인 세계5위권으로 재진입하고 통일시대가 열리면 세계 해운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여기서 해운발전사에 정부차원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수부의 인적구성을 살펴보면 고 거산 김영삼 대통령이 늘 주장하신 인사가 만사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해운업의 재도약을 위한 발전방안】
   언제부터인가 바다의 전문인력인 해기사가 정해진 교육기관을 이수하고 승선경력을 갖춘 후 중견 해기사가 되면서 전문인력의 특채(사무관급으로 특채)로 해수부 중견 간부로 채용되면서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예컨대 이은 해수부 차관이 임명되면서 그간 체험하였던 승선생활과 공무원으로 얻은 전문지식을 접목시켜 해수부의 기능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또한 선진 해운국으로서 행정체계가 확립되었고 한국선급협회(KR)는 그동안 우수한 해기사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급기야는 IAC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lassification Societies) 세계선진 해운국 검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던 중 오공균 회장이 취임하여 본 협회 발전을 위하여 거의 영국에서 상주하다시피하면서 선진 해운선사들과 접촉, 회원사를 급격하게 증가시켜 선급협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부산 강서구 소재 위치로 사옥을 건립하여 세계적인 선급협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아울러, 세계 해양 대통령으로 칭하는 IMO(International Maritime Orginezation) 사무총장으로 임기택 총장이 취임하게 됨에 따라 한국 해운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려준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 해운역사에 처음있는 쾌거를 이룩하였으며, 우예종이 항만공사 사장으로 재임시 선진해운 항만정책을 도입, 우리나라 해운항만에 토대가 구축되어 세계속에 주요항만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정형택 한국해양수산연수원장은 취임하여 해양행정에 귀중한 자산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나라 해운이 도약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바다의 전문인력을 행정관료와 접목시켜 적재적소에 효율적인 해수부 업무를 집행함으로서 얻은 소산이라 할 것이다. 

특히 이중에서 한국선급협회가 IACS Member Ship이 되는 세계속의 유수한 class로 성장했는데 그 중심에는 해기사가 있었고 아울러 일본의 JG(일본 선박검사기관)와 쌍벽을 이루는 정부대행검사 KST의 중심에도 해기사가 있었으며, 업계에서는 선박운항기술과 효율적인 운항 능력을 배가시킨 중심에도 해기사가 있어서 해운발전에 해기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행정관료 출신들이 해기사의 전문성을 배제시키면서 오늘날 우리해운은 성장에서 멈추고 말았다.  즉, 말하자면 해운성장이 Ahead는 고사하고 Stop상태에서 Astern으로 가는데 어떻게 해야만 제자리로 돌려놓고 과거의 중흥기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 대책을 생각하면 기술의 발전은 교육에 기초하여 많은 승선기회를 부여함으로서 고급인력이 양성될수 있고, 해운경영 또한 합리적 발전을 위해서 참여하는 맨파워(ManPower) 정책(전문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며 탁상에서 답을 구하기 보다는 현장에 해법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예컨대 문관, 무관을 병행 등용시킴으로서 전문인력이 해수부의 중견요원으로 진출하여 해양행정가로 성장하게 하므로써 현 급변하는 신해양시대에 적응하는 해운업을 효율적으로 총괄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만 해수부의 영속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결  언】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기간산업(해운업) 육성의 일환책으로 4년 교육에 약 4억이 소요되는 국가의 혈세를 투입하여 양성한 해기사를 적극 활용, 정책의 방향을 수정, 해기사 전문인력을 특채(사무관급)로 등용하는 제도를 다시 부활시켜 보다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조직운영을 하여야만 해수부의 체계적인 행정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본 소고를 접고자 한다.

 

※ 본건은 우리나라의 해운발전을 위해서 관련 학계와 전문가들에 의해 효율적인 해수부의 발전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고 전문 학술 용역과 포럼 등을 개최하는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설정함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