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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항만물류 패러다임의 창출이 필요한 때다
새로운 항만물류 패러다임의 창출이 필요한 때다
  • 해사신문
  • 승인 2004.06.0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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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부 해운물류국장 정상호

항만에도 패러다임이 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인 Thomas Khun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이나 이론 또는 관습 및 가치관의 총체를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시대나 영역에서 특히 옳다고 받아들여지거나,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항만에도 패러다임이 있다. 항만의 존재목적 및 발전방향, 또는 항만 운영과정에서 가장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상식 등이 그것이다. 그간 우리 항만의 패러다임은 항만을 출입구로 보는 것이었다. 항만이란 바로 국내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선박을 통해 외국으로 나가는 출구요, 외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국내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때때로 다른 나라로 갈 화물이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창고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러한 패러다임 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물동량’이다. 얼마나 많은 짐들이 항만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느냐가 항만의 경쟁력으로 여겨지게 된다. 자연히 항만의 양적 성장에 집착하게 되고, 처리실적 위주의 순위경쟁에 얽매일 수 밖에 없다. 매달 우리 항만의 처리량을 다른 항만과 비교하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순위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다시 패러다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T. Khun의 패러다임 개념 중 재미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패러다임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성·발전했다가 쇠퇴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Khun은 이를 ‘과학혁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한 패러다임 안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의 경험이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적 패러다임이 생성되면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거쳐 결국 기존 패러다임은 경쟁적 패러다임에 자리를 내 주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항만에도 바로 지금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간 물동량이라는 명제에 너무나 많은 무게를 두어온 것이 사실이다. 양적 성장과 순위경쟁에의 집착은 결과적으로 항만의 생산성 제고를 통한 고효율 항만과 배후부지 클러스터 구축을 통한 고부가가치항만이라는 장기적인 비젼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결국 최근 우리 항만에 대한 위기의식을 초래한 주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꿔 가기 위해서는 냉철하게 국제물류 흐름의 변화와 미래를 직시하고, 동북아 중심항만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700만TEU 내외에 불과한 물동량을 처리하면서도 유럽지역 물류비즈니스 센터의 57%를 유치해 부산항의 15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로테르담항의 경험은 우리 항만의 미래를 설정하는데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기 위해 다양한 창의와 숨가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하역시설 확충과 현대화 및 노동생산성 제고, Volume Incentive 등 파격적인 유인 제공 등을 통해 우리 항만의 생산성을 선진항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항만 생산성을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평가시스템의 구축은 물론, 부족한 장치장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Dummy Cargo 등 부적합한 화물의 부두 반입을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 항만을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항만으로 만드는 작업도 게을리 할 수 없다. ‘항만 노사정 평화선언’을 통해 물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함은 물론, 7월부터 발효되는 ISPS Code에 대비한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아울러, 항만 배후부지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입주기업에 파격적인 임대료 및 세금감면을 보장하는 내용의 자유무역지역법 개정을 이미 완료했으며, 현재는 일본과 유럽 등의 다국적 물류기업 유치를 위해 해양수산부가 중심이 돼 공격적인 마케팅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배후부지의 신속하고, 저렴한 공급을 위해 배후부지 조성에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 중심항만 구축은 낡은 패러다임에 대한 집착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항만은 물류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지만, 물류의 흐름은 항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종 도착지까지 가장 효율적이고 편리한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육상의 물류와 원활하게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해양수산부는 건설교통부와 공동 Task Force를 구성, 물류의 흐름이 원활치 않은 부분을 찾아내고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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