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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의 평생직장
마누라의 평생직장
  • 해사신문
  • 승인 2013.02.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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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면서 종신직이라는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대표적인 게 교황이다. 교황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종신직은 없다. 종교적 지도자인 교황이 교황청에서 일하는 것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직장이라고 말한다면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성직자도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는 직함을 가진 직장이다. 교황처럼 억지로 종신직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북한의 지도자인 김일성이나 김정일, 또는 각국의 전제군주제의 명맥을 유지한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이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정도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평생직장은 그 정도다.

그러나 평생직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법관의 임기가 바로 죽을 때까지 임기가 보장된 평생직장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95년 사망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끝까지 사임하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죽으면서 임기를 마쳤다. 또 학문으로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낸 교수들은 일반적으로 종신직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옥성득 교수가 종신직에 임명됐다. 그런 사람들이야 평생 자신의 학술을 전파해도 부족함이 있기에 학계에서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게 만든다. 얼핏 보기에 목사나 스님들도 평생 종신직으로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요사이의 대형교회에는 삐딱하게도(?) 그 자리에 연연하는 분도 없는 건 아니다.

최근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대표적인 평생직장인 교황청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전격 사임을 했다. 그의 나이가 85세 라니까, 딱히 사임을 하지 않아도 평생이라는 기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은 나이다. 사임의 이유가 건강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가 직접 발표한 사임 발표문을 보면, “하느님 앞에 나의 양심을 반복해 되돌아본 결과, 저는 고령 탓에 더는 교황직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확신에 이르게 됐습니다.”라고 발표했다. 교황이 직접 자신의 양심 운운하는 바람에 이 문구를 두고 말 많은 언론에서는 성추문이나 바티칸의 권력암투를 미리 예견하기도 하지만,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고 대통령보다 더 많은 서류를 결재하는 교황의 업무량으로 볼 때 85세는 여전히 좀 많아 보이는 나이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추문이나 돈세탁, 그리고 부패 따위의 잡다한 신변의 문제를 감당하기는 좀 벅찬 상황이었다는 사실은 정설로 평가하고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정년을 몇 개 짚고 가 보자. 은행원들은 58세다. 남의 돈이지만 평생 주무르고 살아서 그런지 좀 짧은 편이다. 공무원들은 2013년부터 직급에 관계없이 60세로 같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교원 정년은 62세다. 새로 입법 예고된 법률안은 3년을 더 연장할 수 있게 된다. 결국, 65세가 되는 셈이다. 대학교수의 정년은 공식적으로 65세다. 그러나 언급한 바와 같이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는 딱히 정해진 정년은 없다. 법조계는 아무래도 자신들이 법을 다뤄서 그런지 좀 길다. 대법원장의 정년은 70세, 대법관의 정년은 65세, 판사의 정년은 63세다. 재미있는 것은 대법원장은 헌법·법원조직법에 “중임할 수 없다.”라고 명시돼 있지만, 헌재소장에 대해선 이런 규정이 없어 정년(70세)만 넘기지 않으면 10년, 20년도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배를 타는 선원들의 정년은 몇 세까지일까? 보통 선원의 정년은 62세로 정한 곳이 많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선은 건강진단서에 결격사유가 없으면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한 베터랑 선원이라면 더 오래 붙잡아 두는 게 현실이다. 원양 어선은 상선보다 그런 현상이 오히려 더하다. 경험이 풍부하고 해상경력이 출중한 선장이라면 그런 선원이 선단을 지휘하는 자체가 곧바로 회사의 자산을 키워주는 어획량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62세로 정해진 정년이 무색해진다. 가장 잘 팔리는(?) 선장의 연령이 바라 그 시기이기 때문이다. 만선을 기대하는 선주로서는 당연한 처사다.

교황이나 교수가 평생 정년이 없는 좋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당당하게 선원들도 그 대열에 낄 수 있게 된 셈이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70이 돼서도 근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특별히 멀리 나가는 외국적 상선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연안을 움직이는 크지 않는 화물선은 여전히 나이에 관계없이 승선이 가능하다. 교황처럼 하늘을 우러러 양심에 부끄러울 일도 없다. 성추문? 시쳇말로 뱃놈은 봐준다. 돈세탁? 마누라 몰래 삥땅하는 거 말고는 그럴 일이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잡다한 신변문제? 배타고 나가면 끝이다. 연락하기도 쉽지 않다.

한쪽에서는 선원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배를 타려고 선원수첩을 들고 항만청과 선박회사를 전전한다. 선원이 부족하다는 쪽은 양질의 선원을 구하려는 타당한 이유에서 일 테고, 배를 타려는 선원들은 자신의 경력이 남들보다 쳐지는 경우가 있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현상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 선원들도 배 자체가 평생직장이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보니 평생직장을 가진 사람이 또 한 분(?) 있다. 우리 마누라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녀의 직장은 부산 남구 문현동 광원아파트 1103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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