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이번 APEC에서 발표한 공동 성명은 1990년대 추진하기로 했다가 중단된 ‘Beringian Heritage International Park’ 프로젝트를 재개하는 수준까지로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현재 북극권 상황을 고려하면, 두 강대국의 협력이 북극 경쟁 구도에 미치는 영향은 그 이상의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이번 공동 성명은 북극권의 군사적 충돌까지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지역의 위협 요소를 완화하고 북극 환경을 보존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의 공동 협력은 북극 항로의 기점이 되는 베링 해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감을 완화하는 계기로 작용될 전망이다. 또한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북극권의 자연 환경과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 요구를 수용하면서, 비 북극권 국가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북극 체제 설립의 요구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로도 풀이된다. 궁극적으로는 북극 문제는 인접 당사자국이 주체가 되어 해결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으로 이번 협력을 통해 국제 공원 설립을 뛰어 넘는 다양한 사업의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당시 국제 공원 설립을 추진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어업경계선 획정 문제가 러시아의 암묵적 동의로 재현될 여지가 사라졌다. 또한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시베리아 지역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높다는 점도 사업 확대가 가능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두 나라는 민간을 중심으로 1990년 이후부터 알래스카와 츄코트카를 잇는 베링 해협 해저터널 프로젝트의 추진을 검토한 바 있다. 이 사업은 두 지역의 거리가 85㎞에 불과하고 수심이 50m로 비교적 얕다는 점에 착안하여, 베링 해협에 해저 터널과 교량을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화물과 관광객을 수송하고, 천연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공급하여 관광 증대· 물류비용 저감·에너지자원 확보·지역 발전 등의 경제적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북극권 관광을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현재 북극권 관광은 유럽과 북미 아메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베링 해 지역의 국립공원이 추가로 지정되고 관광 기반 시설이 확충된다는 점, 러시아와 미국 두 나라의 북극권 지역을 동시에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은 관광객 수요를 증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특히 베링 지역은 우리나라·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가 비교적 접근하기 용이한 곳으로 향후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새로운 북극 관광 수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망 거점지이다. 러시아는 동쪽에 설립한 ‘Russia Arctic National Park’이어 서쪽에 추가로 ‘Beringia National Park'를 설립함으로써 북극점을 기준으로 하는 “북극권 관광 벨트”를 구축하게 된다. 이를 통해 향후 북극권 관광의 주도권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동 성명은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두 나라의 실질적인 협력 추진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자연과 인문 환경의 보전과 과학연구 분야의 협력을 넘어, 해운·물류, 에너지, 수산, 관광 분야 등으로 협력 분야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번 성명을 계기로 양국은 향후 국제사회로부터 제기되는 새로운 북극 체제의 설립 등 다양한 북극 현안에 대해서도 보조를 맞추어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 북극권 국가인 우리나라는 이번 공동 성명을 북극권의 주도권을 한 단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여야 한다. 베링 해 지역은 북극 항로의 기점이 되는 지역으로 타 북극권 지역에 비해 접근성이 높다. 아시아 지역을 겨냥한 베링 해 북극 크루즈 관광의 거점으로 우리나라 항만의 이용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크루즈 수요의 확대도 예상된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환경 사업이나 과학연구 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확대된다. 이번 성명에 이은 협정 체결 과정에 대한 동향 파악과 영향, 활용방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