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3-29 18:29 (금)
뚝배기보다 장맛
뚝배기보다 장맛
  • 해사신문
  • 승인 2012.09.21 0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그래도 꽤 유래가 깊은 오래된 속담이다. 오랫동안 못살던 사람이 간만에 동네에 생색을 내고 싶어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를 주최한 주인은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풍성한 음식도 준비했고 마당에 멍석도 깔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바람에 마당 밖에도 자리를 깔아야 했고, 또 음식을 놓을 상(床)이 부족해서 사람들 숫자에 맞추어 상도 펴지 못한 채 그저 멍석 위에 그대로 음식을 펼쳐 놓고 음식을 내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릇을 씻을 틈도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밥을 담을 밥그릇, 떡을 담을 접시마저 부족한 형편이 되었다. 자신이 사는 좁은 집이나 다른 형편을 생각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잔치를 치르며 과욕을 부린 생각 없는 잔칫집 주인의 짧은 생각 때문에 빗어진 촌극에서 나온 속담이다. 그런 상황에서 떡이라도 몇 개 집어든 사람들의 볼멘 허투는 소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석 달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여수에서 해양을 주제로 엑스포를 개최했다. 엑스포라는 말은 전시회, 또는 만국박람회라는 말이다. 그 어원 역시 'Exposition(EXPO)'이다. 여타의 박람회나 전시회를 뜻하는 Exhibition보다는 대규모 행사를 말한다. 또 엑스포는 어떤 주제가 있다. 예전에 대전에서 했던 행사는 과학박람회였다. 이번에는 해양이 주제였다. 그러나 그런 주제를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그런 대형 문화행사를 유치할 당시 행사를 주도했던 해양수산부가 해체되어 그런 주최 측의 동력이 상실되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행사가 지지부진하게 이끌려 오다가 끝을 내 버리는 점은 더 할 수 없는 큰 안타까움이 있다. 부끄럽지만, 이번 여수엑스포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행사였다.

왜 그런 멋지고 대단한 행사가 매끄럽지 못하게 끝이 나 버렸을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여수에서 그런 행사를 개최한 것부터가 잘못된 행사였다. 여수라는 지엽적인 위치는 좋았다. 그러나 여수는 그런 대형 행사를 하기에 아직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였지만 어떤 내부행사를 보기 위해 한두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건 그래도 애교스럽다. 보통은 그런 행사는 며칠을 두고 봐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그곳은 인구 삼십만의 작은 어촌이었다. 숙박시설이 행사에 미치지 못하는 빈약한 수준이었다. 과연 부산이나 인천에서 행사를 개최했어도 그랬을까? 교통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몰고 그곳에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을 일지만, 차를 행사장 주변에 주차할 수 없었다. 시내도 아닌 외곽에 주차하고 그곳에서 배정한 버스를 타고 행사장에 가야 했다. 내국인도 제대로 된 행사장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인이라면 그 불편함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소문난 잔치에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여수엑스포는 해양엑스포로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무슨 계획이나 프로그램은 풍성했다. 지구온난화, 수온상승에 대한 문제점과 그에 따른 남극, 북국의 현상적 변화, 연안문제, 그리고 기타의 수많은 해양문제를 다룰 수 있고 그런 문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밤에 보면 화려하다는 분수 쇼, 그리고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볼 수 있는 대형 수족관이 전부였다. 주요 일간지에서는 대중이 많은 경험을 얻었고, 국가적으로 대단한 계몽과 홍보를 했다고 그 성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거야 행사를 주최한 국토해양부의 설익은 쉰 소리일 뿐이다. 요사이 언론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어두운 구석을 감추는 특별한 성향이 있어서 그조차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그 속담에 일조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나간 행사야 어쩔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행사를 치르고 난 이후에 반성해야 할 점들이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점들은 여전히 있어 보인다. 각국에서 올림픽을 비롯한 여러 대형 사업을 하고 나서 그 시설물들이 폐허가 되어버린 경우는 허다하다.

이번 엑스포가 일반 시민에게 조금이라도 해양에 관한 관심과 경험을 접할 수 있게 했다면 그 기운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엑스포 현장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어야 한다. 산업발전이 비단 육지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고착된 사고방식을 털어내고 해양 중심의 경제 활성화를 깨우칠 수만 있다면 비록 실패한 엑스포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해양에 대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여수라는 도시 전체를 해양의 도시의 모델로 바다가 크고 원대한 발전성의 터전임을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고속철도가 연결되었고 여러 가지 국가 기반시설은 이미 투자가 되었다. 또 남해안을 비롯한 관광산업을 계획해 둔 것도 사실이다.

엑스포가 당장 어떤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머지않은 미래에 그 영향력을 다시 한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여수 엑스포를 기억해 낼 수만 있다면 오늘의 실패도 그렇게 억울할 게 없다. 여수 엑스포의 그 정신을 계속 살려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에 반대되는 속담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속담일 것이다. 멋스럽지 못한 그릇보다는 그 안에 담긴 맛있는 음식을 두고 한 말이다.

많은 시간과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은 여수 엑스포는 이게 서서히 그 장맛을 우려내어 다시 한번 국민에게 해양의 그 알싸하고 매력적인 맛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엑스포의 사후 관리, 우리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각인시켜 주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가 아닌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