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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끗발 있는 번호?
세상에서 가장 끗발 있는 번호?
  • 해사신문
  • 승인 2012.08.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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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받더라도 좀 외우기 쉽고 좋은 전화번호를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지인 중에 전화국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부탁을 해서라도 그저 한번 이야기해 주면 쉽게 잊어버리지 않을 전화번호를 얻어내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자주 볼 수 있지만, 한 때 이삿짐센터 같은 곳은 비싼 돈을 주고라도 2424라는 전화번호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상업적인 이유에서 그런 번호가 중요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사이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특정한 번호가 아니면 좋은 번호가 필요 없어졌다. 이름 자체가 전화번호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특정한 번호, 예컨대 112, 또는 119처럼 상시 필요한 번호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다른 번호를 기억해 내지는 않는다.

범죄현장에 사람이 죽어 있어서 피살자가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전화기를 살려서 1번을 길게 누르면 죽은 사람과 가장 절친한 사람이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단축 번호다. 대부분은 단축번호의 1번이 집이라고 한다. 그다음 번호인 2번은 역시 배우자가 된다고 한다. 중요한 순서대로 1번부터 설정을 해 두는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5번이 집이다.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숫자 자판 중 가장 가운데에 있어서 누르기 쉬운 까닭에 그렇게 설정을 해 두었다. 집이나 아내가 가장 우선 되어야 할 1번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편리한 순서로 정했기 때문이다. 단축 번호는 그런 의미에서 편리하기도 하고 요긴하게 사용된다.

단축번호를 사용하면서 생기는 현대인의 별스러운(?) 현상이 있다. 단축번호는 기억하지만, 실제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지 않는 현상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아마 아내의 전화번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11자리 숫자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물며 고향에 계신 어머니나 심지어 자녀들의 전화번호는 문자나 단축번호로 찾아내지 않고 그 번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위 ‘디지털 치매’라는 현상이다.

현대인이 앓는 최첨단(?)의 이상증세라고 하는데, 학술적인 용어나 자기가 소속된 일에 관해서는 잘 기억해 내면서도 주변의 하찮은 일이나 자주 하는 주변의 일에 관한 기억을 귀찮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예전에는 노래 한 두 곡 정도의 가사는 쉽게 외웠다가 부를 수 있었지만 요사이 현대인들은 노래방 기기가 없이는 애창곡 하나도 부를 수 없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먹을수록 더 그 현상이 강해져서 디지털 치매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산기가 없으면 계산하기 어렵고, 중요한 기념일이나 휴대전화 알람이 없으면 운신하기가 쉽지 않은 현대인들이 병폐를 발견한 학자들의 이야기다. 흔히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 노인들에게 화투나 그림을 그리게 한다고 하지만, 요사이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노인들의 치료에 이 숫자를 기억하게 하는 치료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역시 숫자를 기억하게 하는 현상은 노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치료법이지만 그래도 그 효과는 화투나 그림을 그리게 하는 치료법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치매에 걸리면 ‘신체는 건강한데 정신 줄 놓았다.’라고 해서 심리적이고 뇌파 운동이나 정신적인 것에 신경을 써 치료를 했지만, 요사이 새로 개발된 요법은 그럴수록 환자에게 운동을 시켜서 뇌가 더는 늙지 않고 건강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몸이 건강할수록 그 건강이 미치는 뇌도 함께 건강해져서 치매에 걸리는 현상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 치료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기억해 내기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그 숫자를 많이 외우게 하고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 보고서를 보면 수학자들의 평균 연령이 다른 일반인들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는 기록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가 분명하다. 유명한 말도 있다. 남자는 미인 앞에 무릎을 꿇고, 미인은 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돈은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그리고 권력은 건강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했다. 잘 생긴 마누라야 이미 낚아 놓은 미인이니까 무릎 꿇을 일이 없지만, 어떻든 건강은 챙겨야 할 일이다.

다른 방법이야 돈이 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숫자를 외우려고 노력하는 일이야 그렇게 돈이 드는 방법도 아니다. 당장 마누라 단축 번호를 지우고 번호를 외울 일이다. 물론, 아이들의 번호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 앉아 거래처에 전화할 때도 수첩을 뒤져보거나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찾을 게 아니라 이제 그 번호를 외워서 해야 할 일이다. 뇌의 건강과 치매 예방을 위해 그렇다.

필자가 어느 날 아내의 핸드폰을 들고 길게 1번을 눌러봤다. 딸이었다. 조금 섭섭했다. 그래도 그렇지, 나보다 딸이 우선순위라니. 2번을 눌러봤다. 이번에는 아들이었다. 이런 젠장, 나는 딸이나 아들보다 더 우선순위가 밀려 있었다. 그럼 혹시 3번? 그러나 3번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4번, 5번을 눌러 봤지만 끝내 내 번호는 나오지 않았다. 당장은 이야기하지 못하고 술을 한잔하고 늦게 들어가던 날 잔소리 하는 아내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물어봤다.
“아 믓한다고 늦게 들어와가꼬 씰데읎이 단축번호를 물어보요?”
“아, 왜 내 단축번호는 읎냐고-!”
“읎기는 왜 없어? 당신꺼는 0번이제.”
인도 사람들 참 위대하다. 1번보다 더 끗발 있는 번호, 그 번호는 0번이었다. 마누라 당신은 정말 치매 걸릴 일 없는 위대한 미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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