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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湯)문화, 그리고 냉면
탕(湯)문화, 그리고 냉면
  • 해사신문
  • 승인 2012.08.23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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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나라마다 자국이 자랑하는 음식이 있다. 가까운 일본은 초밥이나 회를 꼽는다. 한때 일본의 언론이 한국의 개고기를 원시음식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소설가 이외수 씨는 오히려 생선을 아무런 요리도 하지 않고 포를 떠서 생으로 먹는 그들의 생선회는 오히려 더 무식하고 원시적이라고 질타를 한 적도 있다.

중국은 워낙에 유명한 요리가 많아서 딱 꼬집어 무슨 요리가 유명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필자가 꼽으라면 다양하고 맛이 있는 만두를 꼽을 수 있겠다. 베트남의 쌀국수, 필리핀의 레통(Lechon. 숯불구이), 태국의 톰얌쿰(수프 종류)은 동남아시아에서 유명한 요리들이다.

서양에도 유명한 요리는 많다. 이탈리아 하면 보통 피자를 생각하겠지만, 너무 일반적인 음식이 되어버렸는지 ‘오빤 강남스타일’ 하는 젊은이들은 이탈리아 요리로 리조또를 꼽는다. 터키의 케밥,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 영국은 감자와 함께하는 소시지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대국인 미국은 딱히 그들만의 요리가 없다. 크리스마스 때 등장하는 터키(칠면조 요리)가 있기는 하지만 시시때때로 먹는 음식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바비큐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그들만의 요리는 아니다. 딱히 미국인의 요리를 꼽는다면 샌드위치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미국의 대표요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지만 역시 그들을 대표하는 음식은 없었다.

세계 각국이 그들만의 대표요리를 내 놓고 있지만, 실제로 여행을 해보면, 그들의 음식이 맛있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한국인의 식성에는 맞지 않다. 맛있다는 그들의 음식을 몇 번 먹다 보면 김치가 그립고, 그도 없다면 매콤한 컵라면이 아쉬운 게 사실이다.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들의 조언은, 세계 어디를 가나 가장 보편적인 입맛을 구할 수 있는 게 닭요리와 볶음밥이라고 한다. 특히 동남아 일대는 어디를 가나 쉽게 주문할 수 있고 그 맛도 한국에서 먹는 닭요리나 볶음밥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꾸준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대표 음식으로 김치를 꼽고, 음식 세계화를 외치는 요리사들은 비빔밥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음식 문화는 국물 요리인 탕(湯)이다. 외국에 이런 음식이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김치나 비빔밥과 달리 국물로 이루어진 탕 요리 자체를 외국에 내 놓기가 쉽지 않아서 소개하는 자체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리 천국이라는 중국에서조차 한민족의 탕 문화를 일반음식과 다른 높은 차원의 음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곰탕,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 보신탕, 삼계탕, 보양탕, 매운탕, 국밥 따위의 탕 종류도 많다. 열거한 탕 종류를 세분하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매운탕도 단순히 생선 매운탕이 아닌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조기 매운탕, 대구 매운탕 하는 식의 여러 형태의 탕으로 변한다. 다른 탕 요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하게 먹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도 역시 탕 요리라 할 수 있다. 특별히 곰탕과 설렁탕은 그 구분이 모호하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그 구분은 역시 쉽지 않다. 소의 뼈나 내장, 양지머리 따위를 넣고 진하게 푹 고아서 육수를 우려낸 음식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 애매한 구분을 식당 주인에게 물어봤다. 틀린 게 딱 하나 있단다. 설렁탕에는 국수사리가 서비스로 나간다고 했다. 역시 만드는 과정은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국물요리인 탕 종류의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식량이 여유롭지 못한 구난한 시절에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기 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국거리에 밥을 말아서 여타의 반찬을 대신해 그 자체만을 먹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도 국물 음식은 소화가 빨라서 양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음식을 문화화시키고 미학으로 발전시킨 프랑스에서도 탕 문화는 있었다. ‘레스토레(restaurer)'가 그것이다. 원래의 뜻은 체력을 회복시키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식당을 지칭하는 ’레스토랑(restoaurant)'은 그래서 생긴 명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데는 탕만큼 좋은 게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특별히 탕 음식에도 온도를 가미했다. 냉면이 그것인데, 냉면 역시 그 육수가 생명이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 육수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만들어 낸다. 거기에 식감 좋은 국수를 넣으면 부산에서 유명한 밀면이 되고, 잘 끊기지 않는 고구마 전분을 국수처럼 넣으면 쫄깃한 냉면이 된다. 서양인들은 음식을 아주 뜨겁게 먹거나 차갑게 해서 먹지는 않는다. 뜨거운 음식은 위에 좋지 않다는 통설 때문이다.

언제나 음식을 식혀서 먹는다. 더욱이 음식을 차갑게 해서 먹는 냉면은 한국에 와서야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고 한다. 서양인의 반응은 차가운 냉면을 먹고도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신기한 탓도 있겠지만 역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 세계화를 외치는 요사이의 국가 정책에 김치나 비빔밥 이외에 하나 더 추가해도 손색이 없는 음식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오직 하나뿐인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며칠 전 T.V의 ‘채널 A’의 이영동 PD의 ‘먹거리 X-파일’이라는 프로에서 냉면 육수의 잔인한(?) 실태를 고발했다. 소의 뼈를 고아서 육수를 우려내 만드는 착한 식당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국적인 체인점을 갖추고 영업을 하는 유명한 식당들까지도 냉면 육수는 쇠고기 다시다와 식초 그리고 설탕을 적절하게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전문가도 구별이 쉽지 않게 비슷한 맛을 낸다고 하고, 그 요리법을 비싼 값에 팔기까지 했다고 한다. 마치 예전에 단백질이 부족한 군 장병들에게 고기 대신 스펀지 같은 인조고기를 보급한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하겠다. 시쳇말로 음식 가지고 장난하는 놈(?)은 패 죽여야 한다고들 하지만, 냉면을 자랑스럽게 한국 음식이라고 전 세계인에게 홍보하려는 그 문턱에서 스스로 침몰당하는 느낌이다.

아름답고 맛있는 우리 민족의 탕(湯)문화, 비단 냉면뿐이랴만 꼭 지켜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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