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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죽는 시조새
두 번 죽는 시조새
  • 해사신문
  • 승인 2012.07.18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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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출판되는 책은 얼마나 될까?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다소 의외겠지만, 놀라지 마시라. 우리나라 일주일 동안의 평균 독서 출판량은 350권이다. 굳이 하루 단위로 계산한다면 50권 정도다. 얼핏 들으면 매일 새로운 책이 50권씩 쏟아져 나와서 좀 많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은 줄잡아 일 년에 2만 권 정도가 책으로 찍혀 나온다. 그러나 중국은 2010년 상반기에만 910만 부를 찍었다. 전 세계 출판량의 20% 정도이고 미국 다음으로 많이 책을 찍어낸다고 한다. 질적인 문제를 따진다 해도 엄청난 출판량이 분명해 보인다. 복잡한 상형문자를 만들어낸 민족답게 책도 많이 찍어낸다.

책을 많이 찍어낸다고 사람들에게 모두 읽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의 독서량은 평균 일주일에 두 권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일 년에 두세 권이 고작이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따진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책 자체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한국인들은 자신이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얻으려고 일부러 책을 사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은 아니지만, 꼭 봐야 할 것 같은 선택에서 책을 보는 경우다. 독서에 흥미를 느끼거나 재미가 있어서 책을 보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학자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가 있다. EBS에서 강의하기 전까지는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국보급 과학자다. <다윈 지능>이라는 책을 쓴 최재천 교수가 바로 그분이다. 단순히 진화론만을 이야기한 책이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21세기 지식 생태계의 전망을 총 망라한 책이다.

최근에는 뉴턴 경제학 시대가 저물고 다윈 경제학의 시대가 열렸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가 아담 스미스였다고 얘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찰스 다윈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책 내용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한 번이라도 방송에서 그가 한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진화론이라는 과학이 아주 재미있는 학문처럼 느껴질 정도다. 당연히 그가 쓴 책도 재미가 있다.

최재천 교수의 책은 새삼스럽게 대한민국에 진화론 열풍을 가져다줄 정도다. 그만큼 책이 재미가 있다. 책이 출간되면서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 그 원인이 책 때문에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발표가 책이 나온 시점과 어우러져 생긴 현상이다. 지난달 16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고교 과학 교과서를 출판하는 인정교과서 업체 7곳 중 3곳이 지난 3월 ‘말의 진화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청원을 받아들였으며, 지난해 12월에도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라는 청원서에 따라 6개 출판사가 관련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고 황당한 것은 삭제를 요청한 단체가 창조론 옹호단체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였다는 것이다. 이후 교과서 저자들이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논란이 국제적으로 확산 되었다. 과학적 근거나 이론들이 종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빈정거리는 댓글이 전 세계 누리꾼들 사이에서 난리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최근 한국의 종교가 주류 과학계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누리꾼들의 댓글은 부끄럽다 못해 낯깎이는 수준이다. 외국에서는 그들이 써 놓은 댓글에도 점수를 다는 모양이다.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댓글은 ‘공룡들은 선풍기 때문에 죽었다.’이다.

선풍기 괴담(fan death)은 위키피디아에서 “한국에서 넓게 퍼진 믿음으로, 밀폐된 방에서 밤새 선풍기를 틀어두고 자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라고 소개될 만큼 미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조롱거리 중 하나다. 실제로 방안에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더라도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확산이 대한민국에 빠르게 전파되어 짧은 기간에 많은 신도를 만들어 낸 것까지는 그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고 인정하지만, 그들의 종교적 신념으로 이론으로 검증된 과학까지 자신들의 종교에 끼워 맞추려는 생각은 지극히 위험해 보인다. 조물주를 중심으로 설계된 기독교 교리에서 보면, 우주의 창조자이자 설계자인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화론은 악마의 주장이다. 중세 때 지동설이나 근세의 진화론이나 다를 게 없다. 성경의 모든 어귀를 진리로 인정해야 하는 근본주의 개신교에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근본주의자들보다 더 근본적인 한국의 개신교계가 교과서의 진화론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보통 휴가를 떠날 때는 누구든지 책 한 권 정도는 가지고 간다. 컴퓨터가 보편화하고 또 요사이 스마트폰이 독서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지식을 담아두는 그릇은 책일 수밖에 없다. 종교를 깊게 믿는 신학자들이나 목사님들이 지금까지도 시원스럽게 대답을 못하는 게 있다면 공룡이나 화석일 것이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배울 가치도 없는 학문이라고 몰아붙이기 전에 공룡이나 시조새가 도대체 어떤 종(種)이었는지 한 번쯤은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때 국사교육을 영문으로 배워야 한다거나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몰아붙였던 무지한 교과부가 성경을 정규과목에 삽입시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오래전에 이미 멸종되어 없어진 시조새가 현대인의 비틀어진 관념 때문에 또 한 번 죽어나가는 대한민국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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