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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
나쁜 사마리아인
  • 해사신문
  • 승인 2012.06.07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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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세상에서 읽기에 가장 지루한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까? 수학책? 영어원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책들이야 아무나 보는 책은 아니다. 모두가 공통의 관심을 두고 읽을 수 있는 책 중에 고른다면 필자는 성경을 꼽겠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이라는 것도 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성경을 끝까지 완독(完讀)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세상에서 가장 많은 팔린 베스트 셀러인데 끝까지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건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는 구약(舊約)의 처음 부분은 그런대로 읽을 만하다. 이른바 창세기다. 또 그다음 내용이 출애굽기다. 그나마 그 두 부분은 이야깃거리가 있어 크리스마스 연극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다음 내용인 레위기, 민수기로 들어가면서부터는 미치고 환장한다. 줄곧 그 죽일 놈의 ‘가라사대’만 충만하다. 한번 잡은 책은 끝까지 모두 읽는 성격을 가진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마태복음으로 시작하는 신약(新約)에 넘어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부분을 읽다 보면 별 내용도 없는 것 같고 쉬 지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족보 하나하나를 따져서 해석해 주는 신학자나 목사님들에게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저 단순히 책이라는 자체를 놓고 보면 별 내용도 없고 길고 긴 이스라엘 역사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라는 책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나 그저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필독서로 읽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이겠지만, 예수교를 믿는 사람들은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내용을 음미한다. 또 성경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나는 내용은 설화나 신화처럼 현대인 믿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것도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주는 교훈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지혜가 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요사이 서점이나 언론에 회자하는 단어 중에 성경에서 나왔던 단어가 유명세를 치르는 게 있다. 사마리아인(Samaritans)이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책이 군 당국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성경에는 솔로몬이나 다윗이 더 유명한데도 교회에서 더러 목사님 설교에나 나올법한 사마리아인이 유명해져 버렸다. 책 내용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내용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경제를 분석한 내용이고 실제로 장하준 교수는 유명한 경제학자다.

그 책이 왜 불온서적이 되었느냐는 분석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뒤로 미루자. 사마리아인은 정통 유대인들과는 적대관계에 있다. 길가에 강도를 만나 죽도록 두들겨 맞고, 거기다 가진 것마저 모두 빼앗기고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같은 민족인 유대인 제사장도, 그리고 이웃인 레위인도 모른 척하고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그를 발견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데리고 여관에 가서 치료도 해 주고, 또 며칠 묵을 수 있게 배려해 주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지고 정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내용이 근거가 되어 유럽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The Good Samaritan Law)’을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다.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 이른바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가 그것이다. 특별히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스위스, 네덜란드, 그 외에 많은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고, 심지어 중국도 구조거부행위를 처벌한다.

이렇듯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해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우리나라보다는 오래전부터 선진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재미없게도, 유독 우리나라는 나쁜 사마리아인부터 유명해 진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그 착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부정적인 관념사 ‘나쁜’을 붙인 건 모두가 착하게 잘살고 있는데 유독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정치적 현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유도한 경제상황을 표현한 까닭이다. 장하준 교수의 책 내용이 그렇다.

며칠 전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했던 말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옛 해양수산부의 부활에 공식적인 반대 견해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와 해수부와 건교부로 이원화되어 있었다면 여수세계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그야말로 시대정신에 걸맞지 않은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도적을 만나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사경을 헤매는 해운 경제를 같은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제사장이 모른 척 지나가는 꼴이다. 십일조를 거두어 신께 제사를 지내는 업무를 맡아서 하는 같은 민족인 레위인이 모른 척 지나가는 꼴이다. 성경대로 한다면 이번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면서 구조를 해 주어야 할 순서다. 빌어먹을, 그 사마리아인이 오기는 오는 걸까?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이미 아무 생각 없이 발언을 내뱉은 국토해양부 장관은 나쁜 사마리아인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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