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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기사출신 소설가 유희민
해기사출신 소설가 유희민
  • 부산=윤여상
  • 승인 2012.01.03 0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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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재단 공모 대상작 '욕심부조화'의 작가
그를 만난 것은 단 두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첫 만남은 해기사 출신의 소설가가 있다고 해서 호기심으로 찾았다. 막무가내로 자신이 단골로 다니는 족발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족발 한 접시에 소주 몇 병을 놓고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기사의 자긍심과 해양에 관한 문학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답변은 "해기사가 뭐 그리 자랑스럽나. 먹고살기 위해 했지."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타겠다"는 52살 먹은 소설가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그와 헤어졌다. 물론 술 값은 기자의 지갑에서 나왔다. 그는 술 값으로 자신이 집필한 '코피리 연가'라는 무게있는(?) 책 한권을 안겨줬다. 화장실에 비치한 이 책은 단 이틀 만에 기자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모처럼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몇 달이 지나고 해사문학상 수상자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올라있었다. 그것도 최고 영예인 대상 자리에... 당선작 '욕심부조화(慾心不調和), 지은이 유희민(兪熺旻). 전화를 걸었다. 동명이인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알았어?" 수상을 하고 처음으로 받는 축하전화라고 했다. 아무도 수상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과연 기자답다"며 칭찬도 날렸다. 이번엔 대상 상금도 1000만원이나 받았으니 족발을 사라고 종용했다. "돈 다쓰기 전에 오라"고 했다. 물론 형식적인 인사와 답례였다.

그런데 이번에 수상한 작품을 본지에 연재를 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허락했다. 해양과 관련한 작품이 나오면 연재해 주겠다는 약속을 그가 지킨 셈이다. 그래서 두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같은 족발집에서 같은 족발과 소주 몇 병이 나왔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저녁에 만난 그는 여전히 까칠(?)했다. 아니 솔직하다고 말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두 차례의 만남과 몇 차례의 전화통화만으로 그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해도 상관 없다. "상금이 많아서 응모했다"는 것이 응모 계기를 묻는 바보같은 기자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그의 답변이었다.

본지가 준비한 인터뷰 질의서도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에게 미리 작성하고 나와달라고 당부를 했건만... 약속은 지켰지만 그의 시원시원한(?) 답변을 게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본명 유희민(兪熺旻). 호는 보해(寶海). 목포사람이라 지역 소주인 보해를 호로 삼았다고 한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표창장을 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이는 52세(1960년生), 직업은 선박부품을 교역하는 작은 업체(아이화마린서비스)의 대표이사. 목포해양대학교(28기 기관학과)를 졸업하고 일등기관사로 승선생활을 했다. 이상이 소설가 유희민의 속세 약력이다.

그러나 뒤늦게 입문한 문학계에서의 그의 약력은 화려함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한편 부럽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라면 해양문학상 대상은 이미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모작은 다른 작품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도 상금을 노리는 글쟁이가 되겠다"고 했다. 시인입네, 문학가입네 하며 과시하는 자들이 싫고, 이들과는 다른 글을 쓰고 싶어서 펜을 들었다는 그에게 어울리는 대답이다.

지난 2009년 독서신문 창립 40주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유희민은 시수문학 최우수 신인상(신인상에 '최우수'를 붙이는 것은 이례적이다)에 이어 산악문학상, 산림청장상, 제5회 해양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화백문학과 한비문학에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장편 '나무십자가의 집', '어머니의 性', '코피리 연가' 등이 있으며, '짚으로 짠 나무십자가를 맨 사람들 이야기'라는 단편집에 '종자 할메 이야기' 등 20여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보해 유희민은 본지에 '욕심부조화'를 연재하는 것을 계기로 해양소설을 집필해 지속적으로 해사신문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작가는 누구든 보고 쉽게 감동을 만들어 내는 구라를 쓰고 허구에 찬 몽상가"라는 보해의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첫 만남 때의 자신있게 말하던 "노벨상을 타겠다"는 목소리가 조금은 믿어지는 것은 왜일까. 앞으로 보해는 본지의 칼럼리스트로도 활동을 하게 된다. 독자 여러분이 직접 보해의 글을 접하고 평가해 보시기를 바란다.

이날도 술 값은 기자의 지갑에서 나갔다. "상금을 마누라한테 강탈당했다(?)"고 했다. 앞으로 좋은 글로 보답하지 못하면 열배 백배로 되돌려 받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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