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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확대는 해운에 무엇을 남기는가
유럽연합 확대는 해운에 무엇을 남기는가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최재선 부연구위원
  • 승인 2004.05.10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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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4억 5천만 명의 거대 ‘유럽연합제국’ 출범
인구 면에서 볼 때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이라는 거대한 ‘유럽연합제국’이 마침내 출범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유럽제국은 1989년 동서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15년 만에 정치적인 통일을 달성했으며, 기존 15개국에 신규 가입국 10개국을 더해 인구가 4억5500만명에 달하는 거대 정치·경제 공동체가 다시 태어났다.
새 유럽연합의 탄생을 놓고, 국제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경제학적으로 여러 가지 논의가 제기되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서고 들어오는 처지에서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평가이다.
특히 소득 수준이 높고, 사회보장제도가 월등한 기존 15개국 입장에서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신생 10개국의 진입에 대해 행복한 느낌보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최근 들어오는 외신의 주요 논조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EU에서는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을 가로막는 지리적인 장벽이 허물어지는 대신 새로운 장벽들도 나타나고 있는데,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동유럽에서 이민 유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회보장 등 공공 서비스에 부담을 주는 사태를 우려해 많은 회원국 정부가 신규 회원국 출신의 유입을 제한하거나 일정기간 동안 취업을 금지하는 등 ‘사회적인 빗장’을 다시 걸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유럽연합, 점유 상선대 64% 증가
해운부문에서도 이 같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4월 29일 발간된 페어플레이에 따르면, 새로운 유럽연합의 탄생으로 회원국이 지배하는 선박량이 종전보다 64% 정도 늘어나 유럽연합이 국제해운정책을 명실상부하게 주도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주도력 확보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 집행이사회(EC)는 상당수의 신규 회원국이 선박안전 및 해양환경에 관한 국제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해운정책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에서 EU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은 새로운 국경을 맞대게 되는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유럽연합의 3각 구도 형성이 앞으로 국제해사기구(IMO) 등 다자간 국제기구에서 해운현안을 논의할 때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들 국가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데 역점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많은 해운전문가들은 해운부문의 경우 워낙 국제성이 강하고, 의사결정 결과에 따라 국가 사이의 이해가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 같은 3강 구도를 중심으로 한 협력 관계 정립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전통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IMO와 OECD 등 국제기구에서의 주도권 다툼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2002년 11월 프레스티지호 사고 이후 유럽연합이 역내의 해양환경 및 선박안전을 내세워 단일 규제조치 도입 등으로 IMO를 압박하고 있는 점이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연합은 발틱해 지역에 선박의 통행을 일부 제한하는 환경민감해역을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이미 한차례 격돌한 예가 있고, 이번에 새로 유럽연합에 가입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경우 역사적으로 러시아와의 정치적인 유대가 강하고, 경제 의존도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신규 가입국 선원 임금 놓고 갈등
한편 영국에 기반을 둔 해운컨설팅 회사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 경제의 성장은 궁극적으로 동·북유럽 지역에 있어서의 화물 환적을 지속적으로 부추길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관세장벽이 철폐되고 신규 가입국가의 시장경제 발전과 국가 간 교역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당장 빅뱅에 버금가는 대규모 변혁보다는 점진적인 성장 이 예상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이 같은 상황 변화의 이면에서 한 가지 살펴볼 점은 기존 동유럽 국가의 선원문제를 둘러싼 잠재적인 영향이다.
신규 가입국가는 현재 1만6000명의 선박 사관과 2만명 가량의 일반선원을 양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같은 수치는 유럽연합 선원 인력의 25%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이들 국가에서 공급되는 선원들의 임금이 더 이상 저임금 수준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라 데 있는데, 선원인력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선원들의 임금 또한 필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특수 화물을 운송하는 탱커에 승선하는 폴란드 공급 선원부문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이들 국가의 선원 공급이 향후에도 그대로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전문가들은 과거에 유럽연합에서 경험했던 바와 같이 이들 국가에서의 선원 공급이 감소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점 가운데, 기존 유럽연합 선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신규 가입국 선원들의 임금이 상승하는 경우 임금 부담 때문에 선박을 역외로 치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 가입하는 국가들의 선원 임금을 적용하는 기준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기존 유럽선주들은 출신 국가의 기준에 따라 선원의 임금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선원노조에서는 기존 국가와 신규 가입국가의 사회보장제도와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서로 대립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의 EU법은 기국과 선원 출신 국가 사이에 양자협약이 있으면 그에 따르고, 나머지 선원들은 기국주의원칙에 따라 승선하고 있는 선박의 국적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

기존 유럽연합 조선소,“걱정이 태산”
유럽연합의 확대는 조선부문에 있어서도 상당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특히 기존 유럽연합 조선소의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존 유럽연합 조선소들은 폴란드, 에스토니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등 신규 가입국에 있는 30여 개의 조선소들이 향후 자신들의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데, 신규 가입국의 10개 회사가 이미 신조 조선소를 증설한 데 이어 추가적으로 17개 달하는 수리조선소와 8개소의 신조 및 수리 조선소를 건설할 예정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존 유럽연합 조선소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폴란드의 조선산업 잠재력이다.
폴란드에는 동유럽 조선소의 3/4이 들어서 있고, 유럽연합 전체 조선소 근로자 9만명 가운데, 1/3을 고용하고 있는 등 성장 동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연합 수리조선시장의 14%를 점유하고 있는 폴란드의 경우 저임금으로 무장한 수리조선부문이 기존 유럽연합 조선소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단스크에 있는 레몬토와(Remontowa) 수리조선소는 폴란드 수리 물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공정경쟁법 전문가들은 폴란드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유럽연합 가입 이전의 조선 물량을 회복하겠다고 나서는 경우 잠재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경쟁, 선박안전과 환경규제 대비필요
한편, 유럽연합의 확대는 단순히 회원국이 25개국으로 늘어났다는 산술적인 증가에 그치지 않고, 유럽연합 지역 내외를 불문하고 해운산업 전반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유럽연합은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해운부문의 공정경쟁정책을 강화하고, 선박안전 및 해양환경 보호제도의 개편, 국제기구 등에서의 발언권 강화, 그리고 러시아 및 미국을 포함한 이른바 해운 3강 구도와의 사안별 협력체제를 강화할 것으로 판단된다.
해운부문의 공정경쟁과 관련해서 유럽연합은 OECD 회의에서 이른바 편의치적국가의 기준미달선 운항이 해운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시각에 따라,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조치 도입을 요구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불이익도 부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입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 국가의 조선 보조금 지급 문제 등도 향후에 어떤 식으로든지 제동을 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선박안전과 해양환경 보호와 관련해서 유럽연합은 두 가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 하나는 신규 회원국 가운데 선박안전 및 해양환경보호에 관한 국제기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이행을 압박하는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현재 항만국 통제에 관한 파리 양해각서(Paris MOU) 하에서 이른바 블랙 리스트 국가 군으로 분류된 사이프러스와 몰타에 대해 선박 검사 및 등록 기준의 개선을 요구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유럽연합은 국제해사기구를 포함한 다가간 기구에서 국제규범 등을 제정하는 경우, 역내 회원국의 이익 확보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행보는 이미 프레스티지호 사고 이후 독자적으로 단일선체 유조선 운항금지조치 등을 도입할 때 엿보이기는 했으나, 앞으로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므로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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