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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학인 김동규(金東奎)
해양문학인 김동규(金東奎)
  • 윤여상
  • 승인 2011.02.07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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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바라기' 편집인 김동규 국장을 만나다
<사진설명> 자신의 저서 '바다의 기억'을 펼치고 있는 김동규 국장

<암 투병 중 해양 에세이집 출간...부산문학상 수상 영예>

산골에서 바다를 알지 못하고 자라난 소년이 전세계 오대양을 누비고 다니는 해기사가 됐고, 해운 소식을 전문적으로 전달하는 신문의 취재기자가 됐다.

또한, 대한민국 해기사들이 가장 즐겨 읽고 사랑하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근무하면서, 문학분야 중 가장 볼모지로 꼽히는 해양분야의 문학가가 됐다.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암도 그의 문학적인 의지를 꺾지 못했다. 심지어 '기름을 부었다'고 했다.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 누군지 감(感)을 잡았으리라 생각한다. 주인공은 한국해기사협회 협회지인 월간 '海바라기' 편집장인 김동규(金東奎.54) 국장.

지난달 6일 부산일보 대강당. 부산문인협회가 주관하는 '2010년 부산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부산문학상은 시 수필 소설 시조 아동문학 등 5개 장르에서 각각 2명씩 총 10명을 시상하며, 부산지역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이다.

김동규 국장이 이날 시상대 앞에 섰다. 수필분야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것. 암 투병 중에 김 국장이 집필한 '바다의 기억'(2009.세종출판사)이 수작에 꼽혔기 때문이다.

부산문학상은 경쟁이 치열하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김 국장은 그동안 문학의 볼모지로 여겨진 바다를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 공로가 인정돼 이례적으로 집필 1년만에 시상대에 올랐다.
<사진설명> 부산문학상을 수상하는 김동규 국장

<산골소년 20대 해기사로 바다 누비며 언론출판 꿈 키워>

중학교 1학년 때 검푸른 에머랄드빛 바다를 보고 인생이 뒤바뀌었다는 김 국장을 지난 28일 오후 그가 일하는 부산 초량동 해기사협회 회관에서 만났다. 암 선고를 받고 집필 의지로 이를 이겨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얼굴은 환했고 투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해운전문지의 대선배이자 그동안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을 막상 인터뷰하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하려니 부담감이 밀려왔으나, 언제고 지면에 한번 초대하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었던터라 단호히 그를 만나 펜을 들 수 있었다. 물론 부산문학상 수상이 계기가 됐다.

김 국장은 경남 창녕 출생으로 소년시절 바다를 모르고 성장했다. 인근 가장 큰 도시인 마산에서 열리는 미술대회에 출전해 마산 앞바다를 본 것이 처음이란다. 그는 저서에서 "이국적이고 낯선, 무섭고 차디찬 곳이었다"고 당시의 바다를 표현했다.

김 국장은 또 "처음 바다와의 만남이었다. 바닷물이 짠지도 모르는 시설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마도 해양문학인으로서의 기초가 이때에 싹튼 것 같다고 김 국장은 기억했다.

하지만 바다와의 인연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목포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했고, 초급 해기사로 바다를 누볐다. 이 시기의 바다를 김 국장은 '실존의 바다'로 불렀다. 그에게 바다는 가슴이 설레는 곳이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김 국장은 미국, 일본, 그리스 선사로 송출되어 승선생활을 했다. 외국인 선기장들과 승선생활을 한 덕분에 국제적인 감각과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해운전문지 기자생활과 해기사협회 사보 편집 외길 20년>

캡틴(선장)이 멀지 않았으나그는 7년여간의 해기사 생활을 접고 돌연 신문편집을 공부했다. 일등항해사로 하선한 그에게 신문편집교육은 자신의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김 국장은 "배를 타면서도 언론과 출판분야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른살이 넘어 시작한 취재기자 생활에 대해 김 국장은 "왜 하필 신문기자였는지는 기억은 없지만 숙명적으로 문학인으로서의 거쳐야 할 길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국장의 문학적인 자질은 이보다 훨씬 전에 나타났다. 해양대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진중문예 시(詩)부문에 입선해서 해군참모총장상을 받았다. 지금은 수필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시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었던 것. 이등항해사 시절에는 한국해기사협회가 주관하는 해양문예공모(제12회)에 대상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4~5년간의 승선생활을 수기로 쓴 것이 가장 큰 상을 받았던 것이다.

김 국장은 언론계로 뛰어든 것이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탓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 국장은 저서에서 이 시절의 바다를 '사람의 바다'로 표현하고 "오늘까지 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3년간의 기자생활을 마치고 그는 현재의 근무처인 해기사협회 편집부에 몸을 담는다. 그의 업무는 해기사협회의 협회보인 '해기(海技)'지를 편찬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만 20년 동안을 이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기자생활이 해기지의 편찬에 큰 도움이 됐다고 김 국장은 말했다. 신문의 취재경험이 해기지의 취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해운전문지 기자로서 취재를 망각하고 있는 우리 후배 기자들이 보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김 국장은 다른 사람이 집필한 글을 게재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야겠다는 의지를 늘 갖고 있었다. 언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한 그는 해기지 편찬 15년만인 지난 2006년 '수필과 비평'을 통해 수필로 등단하며 자신의 소망을 이루었다. 전세계 바다를 구석구석 다녔던 경험과 해운관련 기자생활, 해기지 편집인으로서의 내공이 무게감있는 해양문학인을 배출해 낸 것이다.

김 국장은 해기지 편집인으로서 자신도 등단을 했지만 해기지에 원고를 게재하는 해기사 가족들의 등단도 도왔다. 해기지 편집장의 칭찬이 '고래도 춤을 추게 한 셈'이다. 김 국장은 보람있는 일들 중 하나라고 이를 회상했다.
<암도 집필의지 앞엔 손들어...영원한 해양문학인으로 남을 것>

그러나 등단한지 1년만인 2007년 5월 정기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직장암 선고를 받았다. 주저앉고 싶을 정도의 충격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같은 해 8월 수술을 받았다. 암과 싸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집필의 의지가 사그러드는 것이 정상이지만, 김 국장은 반대였다. 읽고 쓰는 것이 투병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부산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암 진단을 받고 갖은 노력을 다해 투병을 했다. 처방 중에 하나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정신근로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계기로 탄생한 것이 그의 에세이집 '바다의 기억'이다.

김 국장은 "바다의 존재는 내 삶의 이유이자 희망이다. 그 바다가 곁에 있어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고 했다. 암은 최소 5년간을 지켜보아야 한다지만 이미 그에게는 암세포가 없다. 부산문학상 수상으로 그에게서 고단위의 항암약이 나와 암세포를 잠재웠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바다는 아직도 우리에게 미답(未踏)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해양문학인으로서 무궁한 이야기거리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무서웠고 절망적인 과거의 바다를 이제는 대중에게 친숙한 바다로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는 그만한 경험과 능력이 있다.

한편, 오늘도 김 국장이 만든 '海바라기'지가 전세계 50여 항구와 3000여척의 선박, 그리고 대한민국 각지에 배달돼 바닷사람은 물론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차 바다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본 기자 역시 매월 그가 만든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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