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04-25 17:32 (목)
기고/ 선원은 노예가 아니다
기고/ 선원은 노예가 아니다
  • 해사신문
  • 승인 2021.11.03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정근 HMM해상노동조합 위원장

 

HMM 선원들은 임금협상을 진행하면서 '선원은 노예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쳤었다. 선원들은 왜 이러한 구호를 외쳤을까? 그 이유는 가장 먼저 특별법의 지위를 가지는 선원법에 있다.

선원법은 근로기준법의 상위법으로서 특별법의 지위를 가진다. 이러한 선원법의 목적을 살펴보면 선원의 직무, 복무, 근로조건의 기준, 직업안정, 복지 및 교육훈련에 관한 사항 등을 정함으로써 선내(船內) 질서를 유지하고, 선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ㆍ향상시키며 선원의 자질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원법은 선내 질서를 유지하면서 선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및 향상시키면서 선원의 자질 향상을 도모하는 법이다.

모든 법은 법의 목적을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며 그 법이 목적을 수호하도록 개정되어 간다. 그러나 선원법은 법의 목적에서 선내 질서를 유지하는데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선원의 기본권을 모두 박탈하는 법으로 전락해 버렸다.

선박은 근무지와 거주지가 결합된 특수한 형태의 공간으로 비상상황 발생 시, 언제든지 근무해야 하는 환경이다. 또한, 24시간 근무해야 하는 특성상 선박에서는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근무에 임한다. 이에 따라, 선원법은 30일 근무에 대해서 월 6일을 부여토록 하고 시간외근로 주 4시간을 근무하는 것에 갈음하여 월 1일을 부여한다. 여기에 노사합의에 따라 1일을 추가로 부여하면서 총 월 8일의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있다.

처음 승선하는 신규 선원이 9개월간 승선했다고 가정하였을 때, 승선에 따라 발생하는 유급휴가는 9개월에 8일을 곱하여 72일이다. 거기에 일요일과 공휴일은 사용되지 않으므로 통상적인 기간으로 한다면 육상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날은 84일이다.

육상에서 근무하는 근로자가 2021년에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을 포함한 휴일은 토요일 52일, 일요일 52일, 공휴일 12일로 총 116일이다. 여기에 근로기준법상 지급되는 연차휴가는 빠져있으니 연차휴가까지 15일을 더하면 휴일은 총 131일이다.

선박에서 땅 한번 제대로 못 밟고 근무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휴가는 1년중 85일인 반면에 육상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에게는 131일이 주어진다. 그러면서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니 문제없다고 선주는 이야기하지만 월급제로 구성되어있는 선원임금 특성상 그건 선주의 핑계일 뿐이다. 선상에서 발생하는 공휴일에 대해서 정해진 월급에 시간외근로수당이 추가 지급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공휴일은 유급휴가로 주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해상근로자들의 환경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선원법이 탄탄하게 보호해 주고 있다. 선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킨다는 선원법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이 선주들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켜 주고 있다.

과거에는 월급이 육상근로자에 비해 많은 것으로 위로를 해왔지만 육상최저시급이 오르는 동안 장기간 동결되어 온 선원들의 임금은 선원들을 붙잡기에는 메리트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요즘 트렌드와도 맞지 않기 때문에 선원법 목적대로 선원들의 삶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한국 선원들의 미래는 없다.

위와 같은 문제로 인해서, HMM 선원들은 임금협상을 진행하면서 '선원은 노예가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측과 협상을 진행하였다. HMM의 협상은 초기에는 개별 노사의 협상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전국,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한국 선원들이 관심을 갖으며 한국 선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협상으로 진전되었다.

오죽하면 타 노조의 조합원이 파업 한번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이니 얼마나 우리 선원 현실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번 협상에서 선원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왔다는 것, 언론에서 오르내렸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무적이지만 우리 한국 선원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던 파업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조금씩 우리 HMM의 목소리가 전 선원 업계로 번져나가는 나비효과가 되어 우리 HMM이 아니어도 우리 선원의 처우개선을 위한 진정한 노동 운동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처우 개선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다. 강물에서 잠시 멈춰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 멈춘 것이 아니라 떠내려가고 있듯이 처우 개선은 부단히 개선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원들의 삶을 위해서는 전 선원들이 하나되어 우리 처우 개선에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선원은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